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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5, 2015

A Jungian Analysis of 'Beauty and the Beast'

Misael Park - A Jungian Analysis of 'Beauty and the Beast', The Motion Picture by Walt Disney, 1992

A Jungian Analysis of 'Beauty and the Beast',
                ( Walt Disney Motion Picture 1992 )

월트 디즈니 만화영화 '미녀와 야수'에 대한 분석심리학적 해석

    - 박인영( https://www.facebook.com/misaelpark )

      Copyright © Misael Park ;  misaelpark@gmail.com


1. 서언

여성 혹은 남성이라는 개개인간의 1차적인 자기규정은 생물학적 性조건을 기반으로 하여 발달심리학적인 인격 형성과정을 거쳐 각 개인에게 구체화된다:

남자어린이들은 어머니를 비롯한 자기 주변의 여성들과 그 영향력을 내면화함으로써, 자기 내면의 異性인 'Anima(아니마 : 영혼)'을 갖추게 되며, 그렇게 형성된 내면의 이성인 Anima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원하는 남성으로 스스로를 표현하게 된다. 반면에 여자어린이들은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남성, 곧 아버지 혹은 그 대리자들의 역할기능을 내면화하여 내면의 異性인 Animus(아니무스)를 갖게됨으로써, 내면의 남성인 Animus 가 선호하는 여성, 즉 자기 영혼에 걸맞는 여성됨을 가꾸어 나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 사람의 여성 혹은 남성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외면적인 性과는 반대되는 性을 갖고 있는 우리의 陰身인 우리 영혼(Animus/-a)이 실제로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아보려는 정직한 반성과 자각의 체험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에 어느 정도만큼은 왜곡되어 있거나 상처받아 병들어 있는 우리 내면의 異性을 교정 치유하려는 성실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구스타프 융( Carl Gustav Jung )은 한 인간이 자기 삶의 의미와 업보를 발견하고 그 완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인격형성이 1차적으로 마무리되는 인생의 중반 3~40 세 정도를 기점으로, 자기 영혼(Animus/-a)의 실상을 *알음알이*하여 교정 치유하는 작업을 진지하게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 * 알음알이: 행해(行解), 주관(主觀)인 심식(心識)이 대상에 작용하여 그 모양을 분별하고 완전히 이해하는 일. 수행(修行)과 학해(學解)를 아울러 이르는 말. * }

전통사회 안에서는, 왜곡된 정신의 교정과 상처받은 마음의 치유가 神話의 際儀적 再現, 민속 전래설화의 동화적 구연, 풍자적인 가면극과 인형극, 공동체의 집단가무, 굿거리 의식 등과 같은 전통적이며 종합적인 참여예술행위 안에서 성취되었다.

현대사회 안에서도 현대판 종합예술로 일컬어지는 연극, 음악제, TV 드라마, 영화, 대형 스포츠쇼 등의 문화현상들이 현대인의 심리적이며 정서적인 욕구를 수용하고 표출하는 매체로 활용되고 있다.

현대사회의 대중들은 대형 스포츠쇼, 음악제, 연극, TV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묘사되는 이야기의 줄거리와 내용 안에 스스로를 감정이입과 함께 투사함으로써, 이루지 못한 욕구와 억압된 불안, 왜곡된 심리상태 그리고 상처받은 마음을 표현하며 또 그 교정과 치유를 무의식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2. 만화영화 '미녀와 야수( Beauty and the Beast )'의 주된 내용과 줄거리

저주의 마법에 걸려 흉한 외모와 왜곡된 정신을 갖게 된 사람과 그 거주지( 성, 마을, 나라 )가 아름답고 착한 異性의 도움과 사랑을 통해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결국에는 둘이서 행복하게 잘 살게 된다는 이야기는 동서양의 전래동화와 설화 안에서 자주 반복하여 등장하는 테마이다.

'월트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 Beauty and the Beast )' 는 바로 이같은 전래동화적 설화를 소재로 채택한 만화영화이며,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그 주된 내용과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외진 시골 마을에 '벨'이라는 처녀가 홀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벨은 아름다우나 마을의 외톨이이며 책읽기에만 몰두한다. 그녀는 단조로운 현재의 생활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을 동경하는 환상 속에 살아간다.

벨은 억센 체격과 보기좋은 외모를 지닌 '가스통'이라는 마을 청년의 집요한 구애와 청혼을 받는다. 마을의 모든 처녀가 가스통을 흠모하나, 벨은 가스통의 오만불손함과 천박함 때문에 그를 경멸한다.

벨의 아버지 '모리스'는 집의 지하실에 틀어박혀 연구와 실험에 몰두하는 아마추어 발명가이다. 벨은 모리스를 천재로 굳게 믿으며 정성껏 돌보나, 마을 사람들은 그를 미친 늙은이로 취급하며 비웃는다.

모리스는 실험제작에 성공한 장작패는 기계를 박람회에 출품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숲속에서 길을 잃은 모리스는 늑대 떼의 습격을 받고 한 외딴 성안으로 피신한다. 그 성의 주인인 괴물짐승(Beast)은 모리스를 성안의 감옥에 감금한다.

성의 주인인 괴물짐승(Beast)은, 사람의 겉보기만을 중시하며 오만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지녔던 벌로 마법의 저주를 받은 불행한 왕자였다. 그 성의 모든 사물과 하인 시종 들도 마법의 저주를 받아 변형 / 왜곡되어 있다.

벨은 모리스가 타고 갔던 말 '필립'이 홀로 돌아오자, 필립을 타고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괴물의 성에 감금되어 있는 아버지를 찾아낸 벨은 병든 아버지 대신 스스로 괴물의 영원한 포로가 된다.

그러나 괴물의 독선과 갑자기 노여움을 폭발시키는 불같은 성미에 질려버린 벨은 괴물과의 약속을 팽개치고 성을 뛰쳐나온다. 벨은 숲속에서 늑대떼의 습격을 받아 위기에 빠진다. 그러자 괴물이 나타나 늑대떼의 공격으로부터 벨을 구해낸 후 기진하여 쓰러진다. 벨은 괴물을 말에 싣고 성으로 돌아와 간호한다. 이 일을 계기로 괴물과 벨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서로에게 적응하려는 노력을 시작하며 서로 호감을 갖게 된다.

벨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괴물은 벨이 헤어진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걱정하는 것을 보고 벨에게 자유를 주어 그녀를 떠나 보낸다.

벨은 아버지와 재회하나, 그녀를 억지로 차지하려는 가스통은, 벨이 아버지와 함께 있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도 감수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 흉계를 꾸미고, 마을사람들을 선동하여 모리스를 정신병원에 가두려한다.

자기와 결혼해주면 아버지를 정신병원에 가두지 않겠다는 가스통의 제의를, 벨은 단호히 거절한다.

벨은 아버지 모리스가 허튼 소리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것, 즉 그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마을사람들에게 괴물의 존재를 드러내 보인다.

벨과 괴물의 관계를 질투하게 된 가스통은 벨과 모리스를 벨의 집 지하실에 가두고, 괴물을 죽이기 위해 마을사람들과 함께 성으로 몰려간다.

괴물의 성으로부터 몰래 숨어서 벨을 따라왔던 '이빠진 찻잔'이 기지를 발휘하여 - 모리스의 발명품이었던 장작패는 기계를 이용하여 - 지하실 문을 부수고 벨과 모리스를 지하실에서 탈출시킨다. 벨과 모리스도 사람들을 뒤쫓아 성으로 달려간다.

마을사람들과 성안의 집기들( 마법에 걸린 성의 시종과 하인들 )은 일대 격전을 벌인다.

가스통은 괴물을 찾아내어 그에게 싸움을 걸지만, 벨이 떠난 후 삶의 의욕을 잃고 깊은 실의에 빠진 괴물은 가스통에게 맞서지 않고 죽음을 기다릴 뿐이다.

가스통이 저항하지 않는 괴물을 무자비하게 살해하려는 순간 벨이 나타나 절규한다. 벨을 본 괴물은 꿈에서 깨어난 듯 가스통의 폭력에 대항하기 시작한다. 둘은 격렬하게 싸우고 결국 괴물이 승리한다. 괴물은 가스통에게 자비를 베풀어 그의 목숨을 살려준다.

벨과 괴물이 재회의 기쁨을 나누려는 순간 가스통은 괴물을 등뒤에서 칼로 찌른 후 추락하여 죽는다.

죽어가는 괴물에게 벨은 자기가 좀 더 일찍 돌아왔어야 한다며 모든 것이 자기의 잘못이었다고 울부짖는다. 그러나 괴물은 이 모든 것이 잘된 일이라고 말한다. 눈감은 괴물을 끌어안고 벨이 울며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자 마법의 저주를 푸는 신비로운 빛의 빗줄기가 쏟아져내리며, 괴물이 본래의 늠름한 왕자로 변모하여 되살아난다. 성의 모든 사물과 하인 시종도 마법의 저주에서 순식간에 풀려나 본래의 모습과 인간성을 되찾는다. 벨과 왕자는 모든 이의 축복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게 된다.


3. 미녀와 야수( Beauty and the Beast )의 분석심리학적 해석

신화, 동화, 설화, 꿈, 드라마, 영화, 연극의 스토리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분석심리학 안에서는 창작/수용자(집단)의 정신세계 안에서 일어난 심리적인 사건들로 취급한다. 그리고 이야기 안에 등장하는 인물, 장소, 동물과 사물도 개인과 그 당사자 집단의 정신적 상황, 성격과 특징들을 나타내는 상징체계와 의미구조로 해석한다:

우리 이야기의 주인공인 벨은 자신의 현실과 환경에 어울리지 않는 마을의 외톨이 처녀이며, 책읽기가 제공하는 환상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그녀의 아니무스(Animus)로 볼 수 있는 성안의 왕자가 자폐와 분노의 괴물로 변해 있고, 그가 살고 있는 성 역시 마법의 저주를 받아 왜곡 변형되어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벨의 아니무스(Animus)인 왕자가 이처럼 추한 상태에 있게 된 것은 벨의 아버지에 대한 그릇된 고착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벨의 아버지 모리스는 지하실에 틀어박힌 발명가인데, 동네사람들의 말로는 미친 늙은이이다.

분석심리학적 의미체계 안에서, 집, 성, 나라, 마을 등 인간의 거주지가 해당 인물의 전반적인 정신적 상황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라 했을 때에, 거주지의 지하나 건물의 지하실은 종종 바다, 심연 등의 상징과 함께 당사자의 정신적 하부구조인 잠재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나타내게 된다.

미친 늙은이로 몰린 지하실의 아버지를 천재라고 굳게 믿으며 정성껏 돌보는 벨의 정신상태는, (젊은) 여성에게 나타날 수 있는 아버지 혹은 아버지의 영향력에 대한 퇴행성 고착이라고 할 수 있다. 벨이 '병든' 아버지 대신 스스로 자청하여 자폐적이며 자기파괴적인 괴물의 '영원한 포로'가 되는 것은 그녀의 정신적 왜곡상태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가스통이라는 마을청년은 벨이 가진 Animus 의 또 다른 측면으로써, 잘 생긴 외모와 훌륭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자기애(narcissism)와 폭력과시증에 빠져 있는 정신적 유아이다.

외진 산골 마을의 소영웅인 가스통과 저주에 빠진 왕자인 괴물짐승과의 차이점은, 가스통이 외향적이며 천박한 데다가 가학적인 폭력을 즐기는 데 비해, 성안에 갇혀 사는 괴물이 자폐적이라 할만큼 내성적이고, 또한 독선적이며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다가, 갑자기 겉잡을 수 없는 분노를 폭발시키는 피학대적이고 자기파괴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데에 있다.

가스통은 괴물을 못 견뎌하며 그를 맞수로 선택해 싸움을 걸고, 결국에는 둘이 거의 동시에 죽음을 맞는다. 이들은 서로 동떨어진 별개의 인물이 아니라, 벨의 왜곡된 아니무스(Animus)라는 동일한 영혼의 양면이라고 보아야 한다.

벨이 아버지인 모리스를 온전히 되찾게 되는, -다시 말해- 정상적인 부녀 관계를 회복하게 되는 시발점은 자기의 아니무스(Animus)인 괴물과 서로 이해하게 되고 서로에게 적응하려 노력하며 호감을 느끼게 되었을 때였다.

그리고 벨이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도, 즉 삶과 정신의 왜곡도 감수할 것이라는 가스통의 계산을 단호히 뿌리치고 나서 행한 최초의 행위는 괴물의 존재를 사람들 앞에 공개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서 벨은 가스통에게 괴물은 바로 너라고 외친다. ( 우리의 왜곡된 영혼을 *알음알이*하고, 있는 그대로를 직시하는 것은 마음의 교정과 인격 치유의 기점이 된다! )

그러나 지하실 곧, 왜곡된 잠재- / 무의식의 세계에 갇힌 아버지 혹은 그 영향력과 벨이 실제로 해방된 것은 유모어와 모험심이 풍부한 '이빠진 찻잔( 사실은 어린 소년 )'이 아버지 모리스의 발명품을 이용했을 때였다: 정신적 질곡과 유아적이며 퇴행적인 고착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은 지칠 줄 모르며 생기에 찬 모험심과 유모어 감각, 긍정적이며 진취적인 기상 그리고 맑고 소년다운 순수함이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우리의 고유함과 처지를 제대로 활용하는 기지에 찬 지혜이다.

가스통과 괴물은 거의 동시에 죽음을 맞으며, 괴물은 울며 흐느끼는 벨에게 이 모든 것이 잘된 일이라고 말하고 눈을 감는다. 벨은 괴물( 그녀의 Animus )에게 비로소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자 괴물은 본래의 늠름한 왕자로 변모하여 되살아 깨어난다. 그리고 괴물의 성城( 왜곡된 벨의 정신세계 ) 전체도 순식간에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는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조화를 이룬 하나가 되어 끝없이 춤을 추는 벨과 왕자( 정상을 회복한 벨의 Animus )이다.

그들의 옆에는 서로 비슷한 연령과 풍모로 마치 한 쌍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포트 부인( Pot, 보온냄비: 온화함, 모성, 친절함 )과 벨의 아버지 모리스가 미소를 띄운 채 나란히 서 있다. ( 벨과 아버지의 정신적 분리! )

그 포트 부인에게, '이빠진 찻잔'에서 -- 상처받은 유아기와 동심에서 -- 생기에 찬 소년으로 되돌아온 '마틴'이 이제 더 이상 찬장에 갇혀 잠들지 않아도 되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이밖에도 이 영화에 등장하는 '루미에'( 촛불: 밝음과 개방성, 꼼꼼치 못하고 덜렁대며 때로는 파렴치하다. )와 '콕스워즈'( 시계: 근면과 정직, 보수적이고 인색하며 고지식하다. )의 끝없는 반목과 애증섞인 우정; 벨과 모리스가 괴물의 성에 사로잡히거나 성으로부터 도망치거나 했을 때에 그 동기나 장애물로 작용했던 위협적인 '늑대 떼' 그리고 우매하고 폭력적인 '군중들' ( 인생의 위기와 삶의 시련 ) 등등의 여러 인물과 상징체계들이, 여주인공 벨이 정신적 질곡에서 풀려나와 참된 자아를 되찾는 과정 안에서 제각기 중요한 역할기능을 떠맡고 있다.


4. 미녀와 야수( Beauty and the Beast )의 분석심리학적 해석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명제들

4.1. 한 개인이나 공동체가 긍정적인 자기발전과 참다운 자기완성을 도모하려면, 우선 스스로의 내면세계와 영혼의 왜곡상태를 면밀히 성찰하고 정직하게 *알음알이*할 수 있어야 한다.

4.2. 우리는 한 개인이나 공동체가 지어낸 이야기 곧, 개인과 집단의 신화를 분석함으로써, 이야기를 지어낸 개인 혹은 창작- / 수용자 집단 안에 잠복해 있는 심층적 심리구조에 접근하여, 그 왜곡상태를 진단하고 교정과 치유의 전망을 제시할 수 있다.

4.3. 우리는 생활의 실패와 삶의 좌절을, 그릇된 정신적 미망에서 깨어 벗어날 수 있는 자기반성의 기회와 자아성숙의 계기로 삼을 줄 알아야 한다.

4.4. 미지의 것에 대한 열린 마음, 정신적 순수함과 선의, 사랑, 친절함과 온유함,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진취적 기상과 정직 근면함, 스스로의 인격적 품위에 대한 자존심,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이나 타고난 처지에 대한 바른 인식과 계발 그리고 삶에 대한 놀이감각과 생활의 유모어는 우리가 삶을 통해 배우고 익혀야 할 정신적 가치들이며 우리 생활의 덕목들이다.


5. 분석심리학적 스토리 해석이 지니는 한계

개인이나 공동체가 지어낸 이야기( 우리의 경우 만화영화 '미녀와 야수')에 대한 분석심리학적 스토리 해석은, 개인과 집단이 스스로는 모르는 채로 사로잡혀 있는 발달심리학적 왜곡, 정신적 퇴행과 심리적 고착 그리고 그 치유의 암중모색이 개인과 집단의 신화 안에 어떻게 잠복-상징화되어 있는지를 규명하는데 주력한다.

그러나 '미녀와 야수( Beauty and the Beast )'는 미국의 세계적 대기업인 '월트 디즈니 사'가 헐리우드의 첨단 영상제작기술과 엄청난 재력을 동원하여 전세계의 만화영화 시장을 겨냥하여 내놓은 문화소비상품으로서의 면모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같은 문화소비상품으로서의 장편 만화영화가 제기하는 사회문화사적 의미와 정치경제적 이념성의 전모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이념비판적인 영화비평과, 영화에 대한 분석심리학적인 해석-접근방법에는 분명한 괴리가 존재한다.

사실상 만화영화 '미녀와 야수( Beauty and the Beast )'는 거의 모든 '월트 디즈니 만화영화'가 그러하듯, 철저하게 인종- / 性계급주의적이며, 서구우월주의적인 차별사회의 반동적 영상언어들로 가득 차 있다:

하인과 시종들을 거느리는 금발의 귀족, 검은 머리칼의 난폭한 악인, 역시 흑발이며 폭력과 우상에 대한 비굴한 아부꾼이자 피학대성음란증 환자인 땅딸보 '레프', 젊은 여성들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표현과 묘사...



개인과 공동체의 실존적인 내면세계, 정신적 왜곡과 심리치유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추궁하는 분석심리학적 스토리 해석은, 문화현상에 대한 심리-실존주의적 접근과 해석방식이 가지는 일방성과 편협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심리주의적 문화해석의 한계는, 개인과 집단의 신화 속에 담긴 사회성과 정치경제적 이념성의 차원도 고찰할 수 있는 문화사적 안목과 사회학적 비판정신에 의해 보완-초극되어야 한다. [ 끝 ]


    - 박인영 ( https://www.facebook.com/misaelpa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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