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w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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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2, 2009

Familienaufstellung

Familienaufstellung 가족세우기


   가족세우기( Familienaufstellung )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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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돌아간 사람들과 얽혀 있는 가족의 에너지장을 드러내 보인 '가족세우기'는 신선한 영감과 지혜를 일깨워 주었다. 현재 가족들간의 역학관계가 이들만의 주고 받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몇 세대에 걸쳐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 온 것을 여실히 체험하게 해 준 것이다. 그리고 참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것도…."

- 이원규 : '보이지 않는 은줄로 연결된 가족의 형태장',

   가족세우기-Workshop 참가 후기의 일부, 잡지 [지금여기] 7-2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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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소감을 물었다면 '어리벙벙'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참가자 중 누군가가 자신의 문제를 다 꺼내놓기도 전에, 아니 시작하자마자 박이호 선생은 "가족을 한번 세워 보시지요."라고 하셨다. 특별히 나이에 걸맞는 역할이나, 비슷한 사람을 고르라는 주문조차도 없었다. 참가자는 가족 구성원으로 선택된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고 느낌에 따라 자리를 잡아 주었다. ......

가족 구성원으로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서있는 위치에서의 느낌을 물어보셨다. ..... 그래서 누구나가 다 편안하게 느끼는 자리를 찾아, 제자리를 찾아 세우는 것이다. 그런 후에 필요한 경우 사과의 말 혹은 감사의 말을 하게 하고 깊이 머리를 숙이게도 하셨다.

이 모든 과정이 십 분이나 십 오 분밖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젠 들어가십시오"하는 말을 듣는 순간 정말 어리벙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그러나 그런 느낌은 내가 대역으로 참가하면서 사라졌다. 가족 누군가의 역할을 부탁 받고 그가 세워주는 자리에 서있으면 내 것이 아닌 느낌이 감지되고 몸이 흔들리기도 하고 혹은 어떤 말이 내 속에 떠오르기도 했다. ....... 이것이 '가족형태장'이로구나 하고 느끼되 그 자리에 서 보지 않고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 조현미 : '불꽃처럼 터지는 기쁨',

  가족세우기-Workshop 참가 후기의 일부, 잡지 [지금여기] 7-3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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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세우기( Familienaufstellung ) 체험기

      미사엘, 박인영 2004. 06.  
      ( misaelpark@gmail.com )

      Copyright © Misael Park



Web-Surfing을 하다가 우연히 '가족세우기( Familienaufstellung / Family Reconstellation )'라는 심리요법(가족치유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 며칠간 독일어권과 영어권 Internet Site들을 뒤져, '가족세우기'와 그 창시자로 간주되는 버트 헬링어( Bert Hellinger )에 대한 정보를 모았고, 그 내용이나 논지가 진지하고 객관적이며 학술적인 접근이나 분석을 시도한 것이면 주의깊게 읽어 나갔다.

영어권의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버트 헬링어의 독일어 저작들이 최근에야 일부 번역되었고, 그의 가족세우기도 점차 알려지는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물 버트 헬링어와 그의 가족세우기에 대한 독일어권 유럽의 강당(대학) 심리학계와 전문 심리요법가들의 평가,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교계와 매스미디어의 보고서 들은 한결같이 무척 비판적이고 부정적이었다:

버트 헬링어의 가족세우기-요법에서는 심리 상담과 치유에서의 기본 원칙, 곧 내담자에 대한 인격적 대우, 내담자의 의견과 입장을 존중하는 자율적 상담 분위기, 문제 해결과정과 해결책에 대한 내담자와 상담요법가 사이의 허심탄회하고 민주적인 의견교환 들이 철저하게 배제된다는 것이다.

미국 심리학자 버지니아 사티어(Virginia Satir) 등이 창시한 본래의 가족세우기 (Sculpture / Family Reconstellation) 에서 철칙처럼 강조되는 내담자의 인권과 인격에 대한 존중, 내담자와 상담요법가 사이의 민주적 의견교환 원칙 들이 버트 헬링어의 가족세우기-기법 안에서는 실종되었다는 얘기였다.

게다가 가족구성원 중의 한 사람이 세운 자기 가족의 조형(Sculpture : 가족세우기에서 가족구성원들이 서로의 관계 속에 서 있는 모습)은 가족 상황에 대한 그 당사자의 주관적 느낌과 시각을 반영한다는 사실도 버트 헬링어는 망각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해당 가족의 다른 구성원이 세우는 그 가족의 모습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가족 상담 치유에서 버지니아 사티어의 중요 발견 중의 하나이며, 그래서 한 문제에 대한 가족 구성원들의 서로 다른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인지, 수용, 배려해야 한다는 점도 버트 헬링어의 가족세우기에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헬링어의 가족세우기가 때로는 1000 명이 넘는 관중 앞에서 무슨 대중적인 공연처럼 시연됨으로써, 존중되고 지켜져야 할 내담자의 개인 사정과 해당 가족의 비밀이 사정없이 공개된다는 것도 문제였다.

적게는 6 회, 많게는 30 회 정도의 면담 시간을 통해, 가능하면 부부와 자녀 등 복수의 가족구성원들과 함께 심도 있게 진행되는 정상적인 가족 심리상담에 비해, 버트 헬링어의 가족세우기 요법은 길어야 20 분 정도 걸리는 짧은 순간의 충격요법에 가까우며, 그 후에는 내담자와 그 가족 문제가 그저 방기됨으로써, 그들이 앞으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버트 헬링어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내담자 그 자신의 발견과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버트 헬링어에 의해 일방적으로 제시되는 결론적 해결책은 거의 언제나, 아버지, 조상, 부모, 연장자, 그리고 때로는 놀랍게도 살인자나 (성)폭력가해자 등을 존중하며 인정하라는 메시지라는 점도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아버지나 부모, 큰형과 같은 가정 안의 연장자들, 혹은 특정 사건에서의 범행자들이 자신의 죄과와 잘못에 대한 뉘우침이나 후회 표명을 하지 않더라도, 가정 내의 아랫사람(자녀)들이나 범행의 피해자들이, 그들에 대한 무조건적 존중, 그리고 절대적 복종과 애정을 통한 화해를 맹세함으로써 모든 인간의 고민, 갈등과 가족 문제는 해결된다는 억지논리를 펴고 있다고 했다.

결국 헬링어식 가족세우기는 (성)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전근대적이고 야만적인 (성)도덕관념, 비민주적 장유유서주의, 그리고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주의의 변태적 이데올로기를 가족세우기라는 심리요법의 이름을 도용해 전파,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버트 헤링어의 인물됨에 대해서도 현재 독일어권 유럽의 매스미디어와 인터넷 안에서 엄청난 논란이 일고 있다:

실제의 가족세우기-요법 현장에서 버트 헬링어가 취하는 내담자들에 대한 고압적 태도와 권위주의적 처신, 거침없는 성차별 발언, 그리고 독일의 나찌즘-과거사에 대한 그의 애매모한 태도와 몇 가지 극우적 발언들이 문제이다.

특히 버트 헬링어가 한 방송인터뷰에서 공공연하게 언급하고, 자신의 홈페이지에도 올려놓은 발언은 누가 보아도 건전한 상식을 거스르고 있다:

헬링어는 히틀러의 반인륜적 나찌 정권에 대해 목숨을 바쳐 저항운동을 한 사람들과 그들의 행적( 예를 들면 독일군 일부 장교들에 의한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이나, 나찌 반대 전단을 뿌리다 체포되어 사형 당한 학생 숄 남매의 '흰장미결사' 등 )에 대해, 시대의 대세와 역사의 큰 흐름에 저항한 인물들과 그 행적들로 부질없고 무모했으며, 생명을 거스르는 데서는 그들이 극복의 대상으로 삼은 나찌즘 추종자들과 마찬가지로 공격적이고 파괴적이었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그리고 같은 논리로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불복종 평화주의 인도독립 운동과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의 중동평화 노력도 가치절하했다. ( 레자 카웁흐만과 헬링어의 인터뷰, 2001. 8. 26. 독일 SWR2 방송, 헬링어의 홈페이지 http://www.hellinger.com에 그 전문이 수록되어 있음, Ein interview von Lesa Kaufmann mit Bert Hellingfer am 26. 08. 2001 fuer den Suedwestrundfunk, SWR2 : Zeitgenossen - Kulturelles Wort)

또한 헬링어가 최근 독일 베를린에 있는 아돌프 히틀러의 옛관저를 사들여, 히틀러 시대 독일 제 3 제국의 문장이 그대로 걸려 있는 그 저택을 자기와 부인의 새로운 거주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독일어권 인터넷과 매스미디어를 들끓게 하고 있다.

그런데, 헬링어식 가족세우기와 인간 버트 헬링어에 대한 이런 수많은 의구점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헬링어식 가족세우기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들의 체험 수기를 읽어 보면, 때로는 무척 강렬하고 진솔한 사연들과 내용을 대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된다:

헬링어식 가족세우기 현장에서는, 종래의 평범한 인간 상식과 세계관, 특히 삶과 죽음, 인간의 운명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과 사고방식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특별한 체험들도 가끔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심리적 갈등과 정신적 고민의 해소 차원을 넘어서서, 한 인간을 내적으로 거의 다시 태어 나게 하는 이른바 영성 체험이라고 할만한 일들이 헬링어식 가족세우기 현장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다는 것 또한 체험자들의 증언을 따르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헬링어식 가족세우기를 내 스스로 체험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2004년 5월 22일과 23일 가족세우기-Workshop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장소는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의 개신교 하늘씨앗교회였고, Workshop지도자는 현재 국내 유일의 가족세우기 요법가인 박이호 선생이었다.

그리고 2004 년 6월 11일과 12일에는, 불과 몇 년 전 까지 버트 헬링어의 측근으로 활동한 독일인 뷜프리드 넬레스( Wilfried Nelles ) 박사가 주도한 가족세우기-Workshop에 참가했다. 장소는 아세아 연합신학대학교 서울 서대문 캠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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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대 중반 정도 나이의 박이호 선생은 열린 마음과 겸손한 인품의 인격자였다. 독일에서 오래 살았고, 버트 헬링어에게 가족세우기 요법을 배웠다고 한다.

그러나 박이호 선생의 하늘씨앗교회 Workshop에서 실제로 가족세우기가 실행되자, 사전의 정보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던, 헬링어식 가족세우기 요법의 장단점이 내 앞에 그대로 펼쳐졌다:

박이호 선생은 내담자들이 자기 문제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기가 무섭게 그 말을 끊어 중단시켰고, 특정 양태나 요소를 가진 가족세우기를 원하는 내담자의 바램과 요청을 묵살했다.

일차적으로 내담자의 관점과 입장을 우선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 현실적 고민을 주의깊게 듣는 경청자의 역할을 중시하는 심리상담 요법가의 상식적 기본원칙과 박이호 선생의 이런 태도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적지 않은 비용을 기꺼이 부담하고 참석해, 무언가 도움을 바라거나 의문을 풀고자 하는 내담자를 대하는 상담요법가의 태도로는 너무 지나치다 싶었으나, 그것은 박이호 선생 개인의 스타일이나 인품이라기 보다, 버트 헬링어 그 자신까지 소급하는 헬링어식 가족세우기-요법가의 전형적 태도와 처신인 듯 했다.

( 실제로 버트 헬링어는, 내담자가 설명하거나 소개하는 당사자 자신의 문제와 자기 가족에 대한 너무 많은 정보가 상담요법가와 '가족세우기' 현장의 대역인물들에게 오히려 상황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준다고 보아, '불가결한 최소의 정보'만을 선호한다.)

그리고 내담자가 어떠한 현실적, 가정적, 정신적 문제를 느끼고 호소하든지 관계없이, 그 문제의 원인을 내담자의 가족사, 혹은 내담자의 과거 행적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시도되었다.

그러면 내가 참가했던 가족세우기-Workshop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묘사해 보겠다:

- 가족세우기 사례 1. -

종교기관의 복지시설에서 일하는 한 참가자( 여성, 종교인, 20대 후반 )가 설명한 자신의 현실적 문제는, 복지시설의 어린이들을 돌보는 중 자주 느끼곤 하는, 특정 말썽꾸러기 어린이에 대한 충동적 살해욕구 - 순간적으로 그 아이의 목을 졸라 죽이고 싶은 충동이었다. 그리고 당사자는 손목 부근의 찌르는 듯한 통증도 호소했다.

그 진술만을 기반으로 그 여성참가자를 위한 가족세우기가 실행되었다:

모든 참석자들이 빙 둘러앉은 원 안에 그 당사자 여성을 대신할 대역 인물( 참가자 중 한 여성 )이 세워졌다. 또 아마도 죽은 이를 뜻하는 듯, 역시 참석자 중 한 여성을 택해 그 앞에 반듯이 눕게 했다. 그리고 그 누운 사람을 사이에 두고 당사자 대역 여성을 마주 본 자세로 한 남자( 역시 참가자 중 한 남성 )가 세워졌다.

그 후 2, 3 분 정도의 막연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나자 놀라운 상황이 벌어졌다:

서 있던 대리인 여성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거친 한 숨을 쉬기 시작했다. 푸-푸- 하는 숨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졌고, 이윽고 한 손을 머리 위로 치켜 든 채 손날을 세워 자기 앞의 남자를 노려보며 부들부들 떨기도 했다. 분명 엄청난 분노와 공격성의 표시였다. 대리자 여성은 거친 숨을 쉬다 못해, 악마적이라고 까지 할 수 있을 소름 끼치는 괴성을 지르기도 하며 자신의 공격성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런 자제가 너무 힘에 겨운지 이를 악물고 땀을 흘렸으며, 치켜들은 손을 계속 부들부들 떨었고, 흐느껴 울며 눈물도 흘렸다.

그와 같은 상황이 계속되자 박이호 선생의 옆에 앉아 이 장면을 지켜보던 당사자 여성도 어느덧 울음을 터뜨렸다.

현재 당사자가 시달리고 있는 공격성과 살해욕구는 그 가까운 조상 중에 한국전쟁 당시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있고, 그래서 그 살인을 저지른 범행자들의 공격성과 살해욕구가, 비극적 죽음을 당한 조상들 영혼과의 얽힘을 통해 현재의 당사자에게 전이되고 있다는 게 박이호 선생의 설명이었다. 손목의 통증 역시 들끓고 있는 내면의 공격성과 살해욕을 손(목)의 힘을 사용, 발휘해 충족시키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했다.

-- 당사자 여성은 박이호 선생과의 대화나 앞선 수 차례의 가족세우기를 통해서 한국전쟁에서 불행한 죽음을 당한 조상들이 있다는 사실을 밝힌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살인자들의 공격성과 살해욕은 이미 과거의 살인사건 당시에 발현된 것이므로, 살인자들의 것이 아닌, 억울하게 죽은 조상들의 분노와 한( 恨 ), 복수심과 증오 등이 그 후손에게 전이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이윽고 박이호 선생이 나서서 두 대역 인물을 서로 인정, 화해시키는 일종의 해원의식( 解寃儀式 )을 주도했다. 박이호 선생은 여성 대리인을 다독거려 상대방 남성의 눈을 마주 보게 하며 다음과 같은 말들을 큰 소리로 따라하게 했다. ( 자기 자리에 앉아 이 광경을 지켜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당사자 여성도 함께 따라 하게 했다. 아래는 내 기억을 옮긴 것이므로 실제의 박 선생 말과는 조금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당신은 (내 조상의) 살인자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일을 했습니다."
"내게는 내 운명이 있고, 당신에게는 당신의 운명이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운명을 존중합니다."
"내게는 내 삶이 있습니다. 나는 이제 당신을 떠나 보냅니다."
그리고 이 의식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다가서 두 손을 마주 잡는 것과 같은 화해의 몸짓을 하는 것으로 마감되었다.

이 과정을 지켜 보던 나는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20 대 후반 정도 나이의 신체 건강한 젊은 여성이, 규율이 엄한 보수적 종교단체 안에서 공동 생활을 하고, 생리적 욕구와 심신의 본능을 억누르는 철저한 금욕 생활을 하는 한편, 말을 잘 듣지 않는 수많은 어린이들을 위해 하루종일 봉사해야 하는 과도한 스트레스 상황에 매일, 그리고 매순간 노출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내면의 공격성, 즉 특정 말썽꾸러기 어린이에게 순간적으로 살해충동을 느끼는 최악의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대역 인물의 반응이었다. 사전에 짠 각본에 따라 연극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했다. 실제로 그 자리에서 느끼는 정서와 감정에 충실하게 반응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여성종교인이, 박이호 선생의 설명과 당사자 자신의 확신처럼, 실제로 그 조상이나 혹은 조상을 죽인 살인자의 공격성과 살해욕구에 초월적으로 연루되어 있는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그 당사자의 현재적 공격성과 과도하게 축적된 스트레스, 즉 그 절박한 정서적 상황이 놀랍게도 가족세우기 현장에서, 완전한 타인인 대역인물에게 그대로 전이, 발현되었던 것이다.

물론 박이호의 선생이 거기서 제시, 실행한 그 상황에 대한 설명과 해결책은, 헬링어식 가족세우기-요법의 한 전형이었다 :

"현재적 문제와 정신적 갈등의 원인은 과거(의 가족사 사건들) 안에 있다. 가족세우기를 통해 그 원인이 된, ( 과거 가족사의 ) 특정 사건과 장면들을 대역인물들을 써서 드라마처럼 재현하고, 화해와 용서를 주제로 그 사건의 후속사를 새롭게 재구성해 시연한다. 그러면 현재의 문제와 갈등이 해소된다."

그러나 그 당사자 여성은 소속하고 있는 보수적 종교단체에서 계속 여태까지처럼 -- 생리적 욕구와 본능을 억압하며,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 삶을 -- 살아갈 것이다. 박이호 선생의 가족세우기 안에서 자기 문제의 원인에 대한 그런 식의 설명을 보고 들었고, 또 ( 상징적 ) 해원의식을 통해 우선 당장은 어떤 정서적 해소와 정신적 대리만족을 체험했을지라도, 실생활에서 생활습관과 삶의 환경을 구체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한, 그 효과가 얼마나 계속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만약 그 여성종교인의 인사권자나 상급자로서 그런 고민을 상담해 주게 되었다면, 우선 복지시설의 어린이들을 돌보는 업무에서 그 분을 쉬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농촌이나 산간 지역의 다른 공동체로 보내, 자연과 가까이 하며 과수나 농작물을 가꾸는 육체노동을 하는 직책을 주었을 것이다. 각박한 도시환경에서 사람들이나 어린이들에게 밤낮으로 시달리기보다는, 자연 속에서 육체 노동을 하며, 건강한 노동으로 우선 몸이 피곤해서 밤이면 정신없이 잠들 수 있는 생활을 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어린이 살해충동을 반복해서 느낄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일에서 만큼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당분간 손을 떼는 것이, 그 당사자를 위해서도, 또 해당 복지시설의 어린이들을 위해서도 옳은 일이라고 믿는다.

- 가족세우기 사례 2. -

하늘씨앗교회 Workshop에서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사례는 30 대 중반 정도의 한 여자분을 위한 가족세우기였다.

자기 차례가 되어 박이호 선생의 옆자리로 나와 앉은 그 여자분은 당신의 문제가 뭐냐는 박이호 선생의 말에 처음엔 특별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단지 나 자신을 좀 더 알고 싶다거나, 내 삶의 의미를 깨닫고 싶다거나 하는, 어찌 보면 막연하기도 한 바램을 얘기했다. -- 사실 이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떤 특별한 정신적 고민이나 가족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평소의 경향대로, 무언가를 계속 추구하고 배우며, 또 우리 삶과 인생의 진실에 대해, '가족세우기'에서 배울 게 있다면 배워보자는 그런 막연한 학구열이나 구도의식( 求道意識 )이 하늘씨앗교회 가족세우기-Workshop에 참여한 동기였다.

그러자 박이호 선생은 젊은 여자가 그게 왠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식으로 몰아 세우며 제대로 상대를 해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하는 말씀이, 결혼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교제 중인 남자나 이성 친구는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싶지는 않느냐고 했다.

그 여자분은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며, 사실 자기는 남자 문제로 늘 고민이라고 했다. 자기는 남자를 사귀다가도 관계가 깊어져 결혼 얘기가 나올 즘이면 결정을 못 내리고 늘 망설이며 뒷걸음치게 된다고 했다.

박이호 선생은 거기서 그 여자분의 말을 끊어 중단시키고, 그러면 당신이 사귀던 남자와 당신, 그렇게 두 사람만을 세워보자고 했다. 여자분은 박이호 선생의 제안이 뜻밖이라는 듯 좀 의아해다가, 결국 참석자 중 남 녀 한 사람 씩을 택해 모두가 둘러 앉은 원 한 가운데에 서로 대여섯 걸음을 떨어져 마주 보도록 세웠다.

그리고 나서 2~3 분 정도 기다렸을까, 여성당사자의 대리역을 맡은 젊은 여자분이 자기 앞에 선 남자쪽으로 다가가더니, 그 앞에서 양 팔을 벌린 채 마치 춤을 추듯 빙글빙글 맴을 도는 동작을 했다. 여성 대역자는 그런 춤추는 동작을 하염없이 계속했다.

박이호 선생은 자기 옆에 앉은 당사자를 추궁하며, 당신은 생명을 거스르는 죄를 지은 적이 있다고 단언했다. 그래서 당신은 그런 내면의 죄책때문에 당신이 결혼하고 싶은 남자에게서도, 정작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는, 이런 저런 구실을 찾아내 뒷걸음친다고 했다.

그러자 당사자는 몹시 당혹해 했다. 박이호 선생은 대역자가 저렇게 빙글빙글 도는 동작을 할 때는, 생명을 거스르는 ( 여기서는 생명을 죽인 일, 즉 낙태를 통한 태아 살해 등의 일) 죄를 짓고, 그 죄책감때문에 ( 배우자 후보인 남자 )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도는 영혼의 몸짓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당사자는 억울해 하며, 자기에게는 그런 일이 절대 없다고 했다. 그래도 박이호 선생은 단호하기만 했다:

"잘 생각해 보라, 당신은 생명을 거스르는 어떤 일을 분명히 저질렀다."

당황한 당사자는, 유부남과 연애한 적이 있다거나, 다른 사람들의 관계를 질시하고 방해한 적이 있다거나 하는 얘기 등을 꺼냈지만, 박이호 선생은 그런 것이 아니라 분명히 생명을 해친 그런 범죄라며 계속 추궁했다.

당사자는 몹시 혼란스러워 하며, 그런 일이 정말 없었다고 울먹거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한 동안 그런 상황이 계속되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생각해 내고 거의 외마디 비명을 지르듯 말했다.

"내가 스무살 때 친구한테 돈을 줬는데!!! ...
어떻게 하지....
친구는 가난했어요....
난 친구를 도와 주려고 한 일인데...
친구보고 인생을 망치지 말라고 그런건데....."

그렇게 소리지르는 그 여자분은 이미 얼굴이 눈물로 뒤범벅이 된 채 흐느껴 울고 있었다.

박이호 선생이 참석자 중 한 사람을 두 대역인물의 가운데에 반듯이 눕게 했다. (인공유산으로 희생된 죽은 아기의 대역) 그리고 그 아기의 부모 대역으로 다시 남녀 한 쌍을 뽑아 그 누운 사람을 내려다 보며 서게 했다. 그 새에 여성 당사자의 대역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누워있는 아기 대역 앞으로 달려가 무너지듯 무릎을 꿇고 주저앉더니 큰 소리로 통곡하기 시작했다.

박이호 선생의 설명이 이어졌다 :

"우리 자아( Ego / 小我 )의 판단과 우리의 영혼의 판단은 다르다. 자아가 하찮게 여겨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일도 영혼은 기억한다. 요즘 여자들은 일반적으로 자기 뱃속의 태아는 자기 신체의 일부이며, 맹장염 수술 받거나 종기 짜내듯 자기 맘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수많은 가족세우기 사례들에서 나타나는 것은, 인공유산은 큰 죄이며, 당사자의 운명을 바꿀 정도로 그 영혼에 깊은 상처와 부담을 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박이호 선생은 ( 상징적 ) 해원의식으로, 당사자와 대리인에게 큰 소리로 다음와 같은 말들을 하도록 했다. ( 아래는 내 기억에만 의존한 것이므로 실제와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당신은 세상으로 오는 영혼이었습니다.
당신은 태어나고자 하는 생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개입했습니다.
제가 저지른 일입니다.
그것은 저와 당신이 함께 엮은 우리의 운명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당신의 생명과 운명을 존중합니다.
제게는 제 삶과 제 운명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과 당신 죽음을 이 두 사람( 부모 )에게 맡깁니다.
저는 당신의 운명과 당신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저는 이제 당신을 내게서 떠나 보냅니다."

- 가족세우기 사례 3. -

( Wilfried Nelles 박사,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서울 서대문 캠퍼스 Workshop )

뷜프리드 넬레스 박사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서울 서대문 캠퍼스 강당 Workshop 에서, 나는 다른 사람의 가족세우기 때 대리인 역할을 할 기회를 가졌다. 그걸 아래에 옮겨 본다:

가족세우기 당사자는 50 대 중반 정도의 아주머니였고, 만성적 불안, 조급증과 우울증, 그리고 편두통과 불면증을 호소했다. 잘 때에도 이를 너무 심하게 갈아 아침이면 턱과 입이 아프며, 언제나 어디서나 특별한 원인도 없이 지독한 조급증과 불안에 떤다고 했다. 게다가 아주 자주 격심한 편두통에 시달린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에도 몹시 위축되고 경직된 표정과 몸짓이어서 누가 보아도 연민과 동정심이 생기는 그런 인상이었다.

넬레스 박사가 가족관계, 특히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원만하지 못했다거나, 어린 시절 불우하지 않았느냐고 물었고, 또 할머니 대에서 누군가 불행한 일을 겪거나 비극적으로 돌아가신 분이 있느냐고 했다. 그 아주머니는 자기는 부모님께 사랑을 충분히 받았으며 행복한 유년시절과 성장기를 보냈다고 대답했다. 또 외할머니가 갑자기 일찍 돌아가셨는데, 자기는 왜 돌아가셨는지 그 사정을 잘 모르며, 나중에라도 외할머니에 대해 말해 준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러자 넬레스 박사가 참석자 중 한 젊은 여자를 나오라고 해서 바닥에 모로 눕게 했다. ( 죽은 사람을 뜻하는 듯.....) 그리고 또 다른 한 여자를 선택해 그 모로 누운 여자의 머리맡에 세우고 그 누운 여자를 내려다 보도록 했다.

2~3분 정도 기다리고 나자, 누운 여자를 내려다 보며 서 있던 그 대역 여자분이 어느덧 고개를 좌우로 젓고, 눈을 자꾸 감으며 고통스러운 표정과 몸짓을 짓기 시작했다:

입술을 흉한 모습으로 씰룩이기도 하고, 침이 튀도록 혀를 차며 혀를 길게 뽑아 내밀었다가, 얼굴을 잔뜩 지푸린 채 두 손으로 무언가를 자꾸 밀어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심한 몸서리를 치기도 했다.

한 동안 그러던 그 대역 여자분은 넬레스 박사에게 질식할 것 같은 어떤 무서운 암흑과 고통이 자기 앞으로 자꾸 다가오며, 또한 완전한 무력감과 견디기 힘든 절망의 느낌이 자기를 자꾸 사로잡는다고 호소했다. 너무 무섭고 힘들며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고, 이 대리역을 그만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넬레스 박사는 본인에겐 절대 해로운 일이 발생하지 않으니 겁내지 말고, 단지 그 느낌을 저항없이 받아들여 그저 자기 몸을 통해 흘러가게 하라고 격려했다.

잠시 주저하던 그 여자분은 다시 대리인 역할에 몰입했다. 그래도 그 여자분의 공포와 고통은 더욱 심해질 뿐이었다. 그 표정과 몸짓이 너무 처참하며 또 망측하고 기괴해서 보는 사람들도 기분이 나쁘고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내게는, 한 여자가 저 정도로 심한 고통과, 좌절감과 절망에 자지러지는 상황이라면, 죽음에 이르도록 지독한 고문을 받고 있는 것이거나, 혹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잔인하고 변태적인 방법으로 강간을 당하는 것, 그 둘 중에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갑자기 넬레스 박사가 나를 지목하며 대역 여자분 앞에 서도록 했다. 그리고 말하기를,

"이 남자가 바로 당신에게 온 암흑과 고통, 그리고 절망이다. 시선을 피하지 말고 이 남자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라"고 했다.

그리고 내게도 그 여자분을 마주 보라고 했다.

내가 그 여자분을 그토록 절망에 빠지게 하고 몸서리치게 하는 공포와 고통의 역할을 해야 한다니, 섬뜩하기도 하고 꺼려지기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그래, 어디까지 가나 한 번 보자...." 하는 호기심과 오기도 생겼다. 또 그 대역 여자분이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기도 해서, 그 과정을 조금이라도 돕고 싶은 기분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와 그 여자분은 서로 시선을 맞추어 마주보며 서게 되었다.

내가 그 여자분의 두 눈을 응시하자, 그 여자분은 몇 번 눈을 깜박이며 얼굴 근육을 움찔움찔 하기도 했다. 한동안 그러더니 고개를 흔들고 입술을 실룩이며 턱을 떤다든가, 두 손으로 무언가를 밀어내거나 허우적거리는, 그런 조금 전 절망이나 고통의 표정과 몸짓이 확연히 잦아들고 있었다.

이제 그 여자분은 내 두 눈만을 응시하며 나와 조용히 마주 선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가끔 두 눈을 깜박깜박하거나, 볼 근육이 움찔움찔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즈음 내 신체에 이상한 증세가 나타났다:

내 왼쪽 종아리 근육이 미세하게, 그러나 무척 빠른 속도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떨림은 점점 강해졌고, 어느덧 오른쪽 종아리에도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난 처음엔 그것이 일종의 근육 경련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생면부지의 사람들 앞에 나와 서서, 넬레스 박사가 갑자기 시킨 께름직한 역할을 하다보니, 몹시 당황하고 긴장했고, 그래서 종아리에 경련이 온 것이 아닐까 했다.

그러나 그 경련은 무릎 아래 종아리의 뒷부분, 즉 양쪽 장딴지에만 한정되어 다른 곳으로 더 번지지도, 그렇다고 잦아들지도 않았고, 오히려 갈수록 점점 더 심해졌다.

넬레스 박사에게 내 종아리 근육들이 저 혼자 마구 떨린다. 이게 도대체 뭐냐?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는 거냐고 물었다.

넬레스 박사는 내 앞의 대역 여자분에게 했던 말을 내게도 했다:

무서워하지 말라, 당신 신체를 통제하려 하지 말고 신체의 느낌에 자신을 맡겨라, 그저 이끌리는 대로 하라.....

그 와중에도 "맙소사!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자조적인 기분이 드는가 싶었는데, 어느덧 나는 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나란히'를 하듯 두 팔을 앞으로 쭉 내밀어, 손바닥을 위로 펴고 내 앞의 대역 여자분에게 마치 내 두 손을 잡아달라거나, 혹은 나를 받아들여 달라는 듯한 몸짓을 하게 되었다.

그런 자세로 나는 앞의 여자분을 올려다 보고, 그 분은 나를 내려다 보는 상황이 좀 길게 지속되었다. 그러자 이 광경을 지켜보던 관람석의 참가자들이 지루해 하며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사람들이 옆사람과 웅성거리며 강당 안이 전체적으로 소란하고 산만한 분위기가 되었다.

넬레스 박사가 내 앞의 대역 여자분에게, 몸의 느낌과 정서에 저항하지 말고,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 하지 말라며, 후속 행동이나 자세를 종용하는 발언을 몇 차례 했다.

그러자 그 여자분이 내게로 다가와 내 두 손을 잡고, 나를 받아들이는 자애롭고 모성적인 행동을 했다. 그러나 내게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상당히 벗어난 너무 많은 자의적 행위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넬레스 박사가 이 가족세우기는 여기서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대역 여자분이 지나치게 수줍어 하고 또 너무 긴장해서, 대역으로서의 정서적 흐름을 제대로 좇아가지 못했고, 나중에는 그걸 보상하려고 이성적 판단과 의도가 개입된 무리한 행동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 역시 내 추측대로 '성폭행-살해 사건'으로 본다고 했다.

성폭행-살인 사건의 피해자인 외할머니의 고통과 공포, 그리고 그 극한적 절망이 손녀딸인 가족세우기 당사자에게 초월적으로 전이되어, 만성적 불안, 조급증과 우울증, 불면증과 편두통 등의 증세를 일으켰다는 설명이었다.

또 넬레스 박사는 이 가족세우기가 도중에 중단되지 않고 결말까지 원할하게 진행되었다면, 마지막에는 피해자 대역과 가해자의 대역이 서로를 용납, 인정하며 화해하는 것으로 마감됐을 것이라고도 했다.

( 나는 넬레스 박사의 이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성폭력-살해 사건'의 피해자더러 그 가해자를 받아들여 용납하며 화해하라고 요구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없다. 물론 누군가를 증오하며, 피해자-의식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보다 그 당사자를 힘들게 하며 인격적 성숙을 저해하고, 나아가 그 정신세계를 왜곡한다는 것은 심리학적 상식이다. 그러나 범행을 저지른 가해자의 처벌, 그리고 뉘우침과 회개가 선행되어야 마땅하고, 그 가해자를 용서하고 나아가 그와 화해하는 것은 피해자의 자발적 정서 변화와 자유의지에 맡겨 두어야 한다고 본다. 심리상담과 치유의 명목으로라도 피해자에게 용서와 화해 수용을 무슨 도덕적 당위처럼 강요할 수는 없다. )

다음 순서로 넘어가기 전 휴식시간에 나는 피해자 대역을 섰던 여자분과 개인적으로 얘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그 분은 아직도 아까의 끔찍한 느낌이 자기 온 몸에 남아있다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나는 30 대 초반 정도로 여성적이고 갸냘픈 인상의 그 분이 몹시 애처롭고 걱정되어서, 어떻게든 안심시켜 주려 노력했다.

손을 잡아 주고, 아까의 느낌은 과거에 다른 사람에게 있었던 일이라는 것, 그리고 잠시 후면 그런 느낌과 기분은 당연히 사라질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또 대부분의 그 날 참가자들처럼 그 분도 독실한 기독교( 개신교 보수교파 ) 신도였으므로, "정 힘들면 예수님께 의지해 기도하라, 예수님의 무한한 능력과 사랑에 맡기고 안심하라.." 등등 그 분의 신앙심을 상기시키며 내 나름으로 격려도 했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 있은 Workshop은, 가족세우기에서 자기 가족을 세우는 당사자나 대역 인물들이 경험하게 되는, 너무나 생생한 타인의 정서, 그리고 전혀 뜻밖에 돌출, 재현되곤 하는 비극적 과거사의 충격과 그 엄청난 정서적 무게와 밀도에 비해, 그걸 제대로 인지, 처리 해주는, 내담자 및 참여자에 대한 상담심리학적 배려와 처방이 거의 없거나 너무 부족했다.

( 이것은 넬레스 박사의 잘못이라기 보다, '가족세우기-요법' 그 자체에 대한 주최측의 기본적 이해 부족과 매끄롭지 못한 진행, 그리고 넬레스 박사의 독일어를 적절하게 통역하지 못한 데서 온 복잡하고 미묘한 여러가지 어려움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

Workshop이 끝날 즈음 강당 전체의 분위기가 어수선한 상태에서 주최자가 마감인사말 등을 할 때인데, 그 날의 참가자 중 할머니 한 분이 일부러 나를 찾아 오셨다.

그 할머니는 그 날 있은 또 다른 가족세우기에서 갓난 어린 남매를 잃은 한 어머니의 대역을 했던 분이었다. 그 분은 내게 다짜고짜 도움을 청했는데, 아직도 아까 가족세우기 대역을 섰을 때의 비통한 기분이 떠나지 않으며, 가슴이 너무너무 답답하고 울적해서 도무지 어쩔 줄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까 넬레스 박사가 마지막으로 어떤 '선언' -- 그 할머니의 용어--을 했는데, 지금 그걸 다시 해보려고 해도 기억이 안 나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당신은 독일어를 알아듣는 것 같으니, 그 '선언'을 자기에게 다시 말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대역으로 참여했던 가족세우기는, 본래 언니와 오빠가 어려서 거푸 죽고 난 후에,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태어나 성장한 한 아주머니를 위한 것이었다.

넬레스 박사는 가족세우기 당사자 아주머니의 우울증, 그리고 그 당사자 아주머니 큰 아들이 앓고 있는 자폐증의 원인이, 그 아주머니의 돌아간 어머니( 할머니가 한 대역)가 어린 남매를 잃고 나서 충분히 애도할 겨를도 없이, 오히려 그 슬픔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빨리 셋째( 가족세우기 당사자 아주머니 )를 낳아 키운데 있다고 보았다.

즉, 어린 남매를 잃었지만 그 상실감과 슬픔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없던 어머니가 정서적 도피의 방도로 다시 빨리 임신해 아기를 낳아 키웠고, 그렇게 태어나 자란 당사자는 영문도 모르는 우울증에 시달리며 무의식적 자살충동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또 그 큰 아들은 자기 어머니를 자살과 우울증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무의식적 방도로,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 대신 죽는, '효도와 대속( 代贖 )으로서의 자폐증'을 앓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넬레스 박사의 문제해결을 위한 결말 처방은 당연히 그 당사자 아주머니와 큰 아들의 대역에게만 집중되었고, 돌아간 어머니( 할머니가 한 대역 )는 그저 방치되었다.

오히려 넬레스 박사는 당사자 아주머니와 그 대역에게

"나는 이제 당신( 돌아간 어머니 )이 외면했던 슬픔을 당신에게 넘긴다. .... 나와 아들에겐 우리의 삶과 운명이 있다. .... 우리는 이제 우리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등등의 말을 따라하게 했다.

그럼에도, 그 내용과 상황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던 할머니는, 넬레스 박사의 그 말들이 일종의 ( 주술적 ) '선언'으로 자기의 정서적 비통과 암울함도 해결해 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믿으며, 거기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넬레스 박사의 그 말들과 그 가족세우기의 바른 내용을 사실 그대로 할머니께 설명해 줄 수 없었다. 단지 아까의 '성폭력-살인 사건' 피해자역 여자분에게 했던 식으로 할머니를 위로하고, 할머니의 기독교 신앙을 강조하며 격려했고, 또 할머니가 아직도 떨어내지 못하고 있는 대역인물 때의 느낌과 기억을 무마시키려 노력했다.

결국 할머니는 못내 아쉬워 했고, 안타까움과 두려움을 완전히 지우지 못하는 듯 했다. 할머니로서는 절대 중요하게 여기는, 넬레스 박사의 그 '선언'을 내게서도 알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세우기-요법'에서 그 가족을 세우는 당사자 뿐 아니라, 거기에 참여하는 대역에게도 그에 못지 않은 적절하고 세심한 상담요법적 배려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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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족세우기-요법에 대한 내 체험과 판단 및 잠정적 평가를 아래에 몇 가지 명제로 정리한다.

1. 가족세우기 현장에 참여한 대역인물들은 때때로 이질적인 신체 증세와 타자적 정서, 또한 그로부터 촉발된 생소한 자세, 격렬한 감정, 이례적 행동 들을 경험할 수 있다. 그 중 일부는 타인이나 이미 죽은 이들이 겪었던 과거의 사건과 관련된 것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참여자 스스로의 기대와 참여-체험 욕구, (무)의식적 자기 암시, 카리스마를 앞세운 가족세우기-요법 주관자에 의한 직간접적 촉구와 독려, 현장 분위기에 의한 정신-정서적 압박 들에 의해 초래되는 (집단)최면의 결과로 보인다.

2. 가족세우기 안에서 대역인물들에게 일어나는 이런 최면 증상, 그리고 (자기)암시와 (무)의식적 바람의 구현 현상은, 우리 전통 무속의 굿판에서 무당이나 그 보조자에게 일어나는 ( 죽은 ) 혼들의 일시적 빙의( 憑依 ) 현상과  비슷하다.

3. 가족세우기-요법가에 의해 가족세우기 결말에서 실행되는 해결책은, 우리 전통 굿판에서 무당이 神이나 죽은 이의 혼을 불러 데리고 놀며 위무하고, 공수( 신들이나 죽은 영혼들의 말을 무당이 받아 대신 하는 것 )를 풀어놓아, 산 이와 죽은 이를 화해시키고 격려하며, (살아)남은 이들의 삶과 공동체에 화평(和平)이 복원되기를 꾀하는 '해원의식( 解寃儀式 )'과 일치한다.

4. 나와 내 가족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구복(求福)종교'가 그 주종을 이루고, 강렬한 감정적 (신앙)체험을 긍정적으로 여겨 대놓고 독려-갈망하며, '용서와 구원'에 대한 주관적-배타적 확신에 집착하는 한국 그리스도교, 특히 한국 개신교계의 샤마니즘적 경향과 주정주의(主情主義)적 신앙 행태에 비추어, '헬링어식 가족세우기-요법'은 한국 사회, 특히 한국 개신교 인구공동체를 중심으로 큰 파급 잠재력과 영향력을 지닐 것으로 보인다.

5. 독일어권 유럽 현지에서 일고 있는, '헬링어식 가족세우기'의 부작용과 결함 및 그 모순점들에 대한 사회적 논란과 치열한 학문적 담론을 감안해 볼 때, 한국 그리스도교 신학자들과 (민속)종교학계, 그리고 전문 심리상담 요법가들과 종교심리학자들의 이에 대한 공정하고 치밀한 본격적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 미사엘, 박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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