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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3, 2009

소설 읽기의 해석학적 반성

소설 읽기에 대한 해석학적 반성

박 인 영 ( misaelpark@gmail.com )

copyright © Misael Park

       

* 대상 : 유재용의 소설 [ 내 우상( 偶像 ) 쓰러지다 ] / [ 누님의 초상( 肖像 ) ]

* 출처 : [ 제3세대 한국문학 제 14권 ] 유재용 편, 삼성출판사 1986, 24판

* 동일책 수록작품 : 그림자, 내 우상 쓰러지다, 고목, 기억 속의 집, 누님의 초상, 풍경화 속의 자전거길, 관계, 타인의 생애, 下人, 어떤 생애, 환희, 商地帶, 손 이야기, 파수꾼, 마흔 살에 얻은 행복, 聖者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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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해석학적 도구로서의 융-심리학

융(Carl Gustav Jung)의 분석심리학에서 우리는 일종의 유심론적( 唯心論的 ) 진화론을 볼 수 있다 :

인간의 마음과 정신은 미완성 상태에 있는 비정형의 어떤 실체로서 '자기완성'이라는 수렴점을 지향해 현재적 자기를 부단히 초극해 나아간다. 개개 인간의 온갖 체험과 고뇌는 미지의 '자기완성'을 향한 다양하고 역동적인 과정이며, 해당 개인의 온전하고 고유한, 실존적이며 심리적인 경험이다. 개인의 정신과 마음은 사회 현상과 역사, 문화와 종교, 집단의 상황과 개인의 운명이 결집되어 구체화되고 반성되는 유일무이한, 의미 지향과 진화의 장(場)이다.


그러므로 예술과 종교, 삶과 문학에 대한 해석학적 반성, 인간 영성과 실존의 의미를 묻고 반성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융-심리학과 만나게 된다.

작가 유재용은 그의 일인칭 시점 소설 [ 내 偶像 쓰러지다] 와 [ 누님의 肖像 ]에서 소설 속 話者인 '나'의 입을 통해 무척 상이한 경향과 운명의 두 인물 - '형'과 '누님'을 보여준다.

'융-심리학'이, 인간 정신과 마음이라는 압도적이고 경탄할 만한 특별한 현상과, 문학과 예술에 대한 유용한 해석학적 도구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유재용의 소설, [ 내 偶像 쓰러지다 ]와 [ 누님의 肖像 ]을 새겨 읽었다.


1. [ 내 偶像 쓰러지다 ]

소설 [ 내 偶像 쓰러지다 ] 속의 '형'은 양심적 理想주의자이며, 돈키호테 식의 용감하고 낭만적인 행동주의자이다.

'형'은 부유한 양조장 소유주이며 지주인 '내 아버지'의 장손으로, 일제 시대 때 조선 전체에 몇 명 있을까 말까 한 동경제국대학 유학생이었으며, 집안과 마을에서 가계의 옛영광을 다시 세우리라는 기대를 받는, '내 우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동경에서 아무 부러울 것 없는 부유한 유학생의 신분으로 사회주의 단체인 [ 共生會 ]에 가담해, 야만적 착취를 받으며 죽어가게 될 조선인 징용노동자들을 탈출시키려다 체포된다. 노동자들의 자백으로 그의 주도적 개입이 드러나고, 혹독한 고문 끝에 거의 의식이 없던 상태에서, 그가 좋아하던, [ 공생회 ]의 주모자 여대생, '임성자'의 이름마저 밝히게 되어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일거수 일투족을 주재소 순사에게 신고해야 하는 나약한 '꺾인 청년'이 되어 한동안 하릴없이 살아간다.

그는 동경에서 체포되었을 때 고문에 대응하느라 거짓으로 자신이 언급했던, 서울의 옛하숙집 여학생이 그일 때문에 모진 고초를 겪다 실성했다는 소리를 듣고 그녀와의 결혼을 추진하기도 하고, 소작농의 딸과 결혼을 기도해, 신분 계급 파괴와 착취 구조 타파를 몸소 실천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그러나 그의 그런 노력들은 집안과 부모의 반대와 개입으로 번번히 좌절된다.

그는 자기집 소작농들에게 토지와 노동 수확의 공평한 분배를 역설함으로써 마름( 소작농과 지주 사이의 중관 관리자 )들의 원성과 아버지의 분노를 산다.

일제 말기 징용으로 끌려가게 된 그를 아버지가 빼내어, 고향의 광산에서 사무 보는 일로 징용을 대신하게 한다. 하지만 그는 사무직을 마다하고 직접 갱도에 내려가 육체노동을 하는 힘들고 위험한 광부일을 자원해 계속한다.

해방이 되자 그는 스스로 부유한 지주의 아들이면서도, 자본가와 지주들의 땅과 재산을 빼앗아 재분배하는 일에 앞장선다. 당연히 집안 전체, 특히 아버지의 배신감을 한몸에 받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결국 지주, 자본가 계급 출신이라는 것이 문제가 되어 공산당에서 배제되고 만다.

그는 살길을 찾아 월남해 인천에서 교사로 생활하려 한다. 그러나 일제 때 그를 못살게 굴던 조선인 순사가 이제는 경찰서의 형사가 되어 그를 쫓아다니며 그의 좌익 전력을 문제삼아 그를 괴롭힌다.

도망치듯 서울로 학교를 옮긴 그는 서울에서 한국전쟁을 맞아 인민군의 서울 점령을 보게 된다. 월남자인 그는 처형 대상이나 속죄의 뜻으로 의용군에 지원할 것을 강요받아 인민의용군이 되어 전선에 끌려간다. 인민군이 패주하는 틈을 타 탈출에 성공한 그는 서울에 돌아오나 의용군 지원자라는 전과는 그의 교사 복직을 불가능하게 한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선이 다시 남쪽으로 내려오자 그는 국민병 대열에 들어가 남쪽 후방에서 사관학교에 자원 입대한다. 소위 임관 후 그의 높은 학력을 인정받아 후방의 교관요원으로 차출되나, 그는 일선 소대장을 자원해 전방에서 전사해 한줌의 유해가 되어 돌아온다.

이제 성장한 ‘나’는 어린 시절 ‘형’이 내게 보여주었던, 잃어버린 형의 습작 동화 [ 포로가 된 왕자 ]의 원고노트를 찾고 싶어 한다.

어린 시절 ‘나’는 ‘형’이 내게 보여주기를 원했던 그 동화를 번번히 첫 페이지만 겨우 읽고 집어던지고선 형에게

“재미 하나도 없던데, 뭐!” 하고 퉁명스럽게 대꾸했었다.

‘내’가 기억하는, ‘형’의 습작동화 [ 포로가 된 왕자 ]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푸르기만 나라의 차칸 왕자가 알찬 나라의 예삐 공주를 만나려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알찬 나라에 가려면 큰 강 셋을 건너야 하고, 큰 숲 셋을 헤쳐 나가야 하고, 큰 산 셋을 넘어야 하고, 그리고 나서 다시 바다를 건너야 합니다. 차칸 왕자는 첫번째 강을 건너 첫번째 숲 속에 들어갔을 때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형’이 쓴 [ 포로가 된 왕자 ] 습작노트의 행방과, 형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며, 형이 왜, 언제부터 동화를 쓰게 되었을까 하고 상념에 젖는 ‘내’게 형의 옛 친구가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준다.

“자네 형은 말야, 늘 구멍 뚫린 가슴을 채워 줄 여자를 찾구 있었지. 그것이 공주였는지, 천사였는지, 그저 평범한 여자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자네 형은 늘 구원의 여인을 찾지 못해 애쓰구 있었어. 이런 말이 자네에게 도움이 될래나?”

작가 유재용은 소설 [ 내 偶像 쓰러지다 ]를 다음 구절로 마감한다.

“[ 포로가 된 왕자 ]의 행방은 끝내 알아 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읽지 못한 [포로가 된 왕자]와 못 다 살고 간 형의 생애와는 무슨 연관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응어리져 내 의식 속에 체증처럼 묵직하게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


2. [ 내 偶像 쓰러지다 ]에 대한 해석학적 반성

작가가 [ 내 偶像 쓰러지다 ]를 통해 한 일과 독자가 그걸 읽음으로써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일까?

2.1 작가는 우선 [ 내 偶像 쓰러지다 ] 안에 ‘형’의 삶과 그에 영향받은 ‘내’ 삶을 재구성해 기술, 묘사해 소설로 내놓는다.

2.2 그러면 이제, 작가를 포함한 이 소설의 독자는 완성된 [ 내 偶像 쓰러지다 ] 속의 ‘형’과 ‘내’ 삶의 심리적 원동력과 경향, 삶의 결정들에서의 사회문화적 동기들, 그 결과물들과 사건의 귀결들을 가늠하거나 발견하게 된다 : 예를 들어, 양심적 이상주의의 행동과 실천, 그리고 그런 삶의 태도와 결정이 초래하는 현실에서의 실패, 그 좌초와 비극의 도덕적 호소력과 미학적 감동….

2.3 동시에 그 여운과 교훈에 비추어 현재적 자기와 자기 삶의 모습과 결심, 실천들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성찰, 해석하고, 그 해석의 결과와 전망을 매일의 일상에서 원용하게 된다: 양심적 이상주의의 포기, 혹은 적극적 함양, 그리고 그 실천노력의 폐기 혹은 강화, 이상주의의 실천-참여가들에 대한 동조와 격려 혹은 외면과 가치 절하…

2.4 소설문학의 장르적 특이성과 미덕은 여기에서 그 누구에게도 강령과 지침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독자의 문학적 감수성에 이런 미학적 수용과 가치판단, 그리고 도덕적 선택을 선뜻 떠맡긴다…


3. [ 누님의 肖像 ]

이 소설 속의 ‘누님’은 위기가 닥쳤을 때 마다 언제나 온 집안을 구해낸 ‘구원자’이다:

일제 때 좌익운동에 가담했던 ‘내 형’이 주재소 순사들로부터 고초를 겪을 때, 순사 쯤은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일본인 경찰서장의 아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어려움에 빠진 온 집안과 ‘내 형’을 구한다. 그리고 일제 말기 ‘내 형’이 징용에 끌려가게 되었을 때도, ‘형’이 고향 광산에서 일하는 것으로 징용을 대신하도록 ‘누님’이 경찰서장 아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영향력을 발휘한다.

해방이 되어 공산체제가 들어서고, 지주였던 ‘내 부모님’과 온 집안이 모진 고초를 겪게 된다. ‘누님’은 소련군 장교와 친분을 맺어 집안과 부모님을 구해낸다.

그리고 ‘누님’의 도움으로 식구들은 무사히 월남해 서울에 정착한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식구들은 다시 공산 치하에 살게 된다. 시골 외가로까지 온 가족이 피신했으나, 결국 아버지는 월남한 반동분자로 지목받아 보안서에 끌려가 처형의 위기에 몰린다. 이때 다시 ‘누님’이 이번엔 인민군 장교와 함께 기적처럼 나타나 온 가족과 아버지를 구한다.

인민군의 퇴각과 함께 ‘누님’의 소식과 종적이 끊기고, 살아서 그토록 ‘여동생', 즉 '내 누님’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어하던 ‘내 형’도 국방군 소위로 전선으로 나간지 겨우 두 달 만에 한 줌 유해가 되어 돌아온다.

그 후 삼십 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으나, '나'는 ‘누님’의 소식을 전혀 알지 못한다.

( 이 소설의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다. )

“위기에 처해 있는 누님을 구해 줄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4. [ 누님의 肖像 ]에 대한 해석학적 반성

4.1 [ 누님의 肖像] 전편을 관통하는 일관된 정서와 여운은 이 소설의 일인칭 話者인 ‘나’의, ‘누님’에 대한 감탄과 고마움, 채무의식( 債務意識 ), 애처로움과 동정, 그리고 연민이다.

4.2 그리고 남는 물음은 ‘누님’의 인생 여정과 그 운명에서 ‘누님’ 자신의 자유의지와 선택에 대한 것이다:

누님의 위치와 신분, 가족력과 역사적 상황이 ‘온 집안의 끊임없는 구원자’라는 누님 삶의 모습을 이루었을까? 아니면 그것은 ‘누님’의 성향, 도덕적 경향과 기호, 의지적이며 지성적 선택에 의해 결정된 것일까?

4.3 환경과 가족, 사회적 처지와 역사적 상황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 단독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자기 삶과 그 특별한 상황들을 공유하는 자기 가족과 주변사회에, 자기만의 고유한 경향과 선택에 의해 온갖 영향을 미치지 않는 개인도 없을 것이다.

개인은 자신의 선택과 경향으로 그가 몸 담은 공동체와 역사의 운명을 결정하고, 반면에 한 개인의 사회적 처지와 환경, 그가 성장, 소속한 가족과 공동체, 그 역사적 상황 들은 그 당사자 삶의 방향과 양상을 성형한다.


5. 결어를 대신하여 :

두 소설에 등장한 ‘내 형’과 ‘내 누님’의 비교

[ 내 偶像 쓰러지다 ]의 ‘내 형’ : 실현할 목표를 지향하는 이상주의자, 양심과 원칙을 따르는 행동, 실천가, 현실과 사회, 역사 앞에 번번히 실패하나 정신적으로는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이상과 양심을 실천에 옮기다 목숨을 잃는다.

[ 누님의 肖像 ]의 ‘내 누님’ : 눈앞의 현실을 타개해 나가는 실용주의자, 처세와 인간관계, 가족애 안에서 자아 실현과 삶의 의미를 찾는 관계지향적, 모성적 인물. 자신의 처세술과 인간 관계,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과 희생 안에서 인간존엄과 개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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