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sus the bastard child 사생아 예수
The Virgin and Child from the Apse of Hagia Sophia ( Istanbul, Turke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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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the bastard child 사생아 예수
- 박인영, Misael Park www.facebook.com/misaelpark
( misaelpark@gmail.com copyright © Misael Park )
* 이 글 안에 인용된 신약성서는 '한국 가톨릭 200주년 신약성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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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의 첫 책인 마태(오)복음은 예수의 족보로 시작합니다. 예수는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이자 위대한 신앙의 선조인'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또한 역사상 처음으로 통일 유대왕국을 세워 다스린 이스라엘 민족 최고의 영웅 '다윗'의 자손이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지는 1.18 ~ 21 을 잘 새겨 읽어보면, 한편 예수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인 요셉'의 생물학적 아들이 아니며,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정혼자인 요셉과 동거하기 전에 요셉과는 관계없이 예수를 임신했다고도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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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주년신약성서 마태오 복음 제1장
1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았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았다.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제라를 낳았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았으며 헤스론은 아람을 낳았다.
4 아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았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벱을 낳았으며 오벱은 이새를 낳았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고
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았으며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았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8 아삽은 여호사밧을 낳았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았으며 요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9 우찌야는 요담을 낳았고 요담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0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았고 므나쎄는 아모스를 낳았으며 아모스는 요시야를 낳았다.
11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고니야와 그의 형제들을 낳았다.
12 바빌론 유배 후에 여고니야는 스알디엘을 낳았고 스알디엘은 즈루빠벧을 낳았다.
13 즈루빠벧은 아비훗을 낳았고 아비훗은 엘리아킴을 낳았으며 엘리아킴은 아졸을 낳았다.
14 아졸은 사독을 낳았고 사독은 아힘을 낳았으며 아힘은 엘리훗을 낳았다.
15 엘리훗은 엘르아잘을 낳았고 엘르아잘은 마딴을 낳았으며 마딴은 야곱을 낳았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가 태어나셨다.
17 그러니 세대수는 모두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으로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로부터 그리스도까지가 또한 십사 대이다.
18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러했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했는데 그들이 동거하기 전에 몸가진 사실이 드러났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롭고 또한 마리아의 일을 폭로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몰래 그를 소박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이런 속셈을 하고 있을 무렵 마침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그에게 말했다. "다윗의 자손 요셉! 마리아를 당신 아내로 데려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사실 그 몸에 수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21 그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당신은 그 이름을 예수라 부르시오. 사실 그는 자기 백성을 그 죄에서 구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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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 복음이 쓰여지고 전해진 초기 예수운동-공동체와, 복음서들의 저자(와 편집자들)은, 예수는 '사생아'였다는 반대자들의 비난, 모독 여론, 그리고 무시와 혹평을 감내하며 초극하기 위해 무척 절치부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 * 예수의 '사생아' 신분 논란에 대해서는 여성신학자 Jane Schaberg의 The Illegitimacy of Jesus : A Feminist Theological Interpretation of the Infancy Narratives, HarperCollins, August 1987 참조 *)
마태오복음 1.1~16 의 예수 족보는 남자(아버지)에서 남자(아들)로 이어지는 가부장적 족보임이 분명한데, 주의해서 읽어 보면 아버지에서 아들로만 이어지는 가계(家系) 나열에는 이질적이고 쓸데없는 4 명의 여자(어머니)가 마지막에 나오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이름과 함께 불쑥 끼어들어 있습니다.
히브리성서(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이 네 명의 여자는 근친상간을 통해 자녀를 낳은 다말( 1.3 ), 사창가의 마담이었던 라합( 1.5 ), 이스라엘인이 아닌 이방인 여인으로 유혹 - 구체적으로는 아마도 간음으로 둘째 남편을 얻은 룻( 1.5 ), 다윗왕이 그의 충직한 장수 우리야를 비열한 술수로 죽이고 뺏은 그 아내, 밧쉐바( 1.6 ) 입니다. 4 명 모두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비도덕적이며 스캔들이 될 만한 사연을 지닌 기구한 운명과 비정상적(?!) 출신 신분의 여인이지만, 동시에 이스라엘 민족사에 기리 남은 영웅 아들을 낳아 키우거나, 그 가계를 이은 위대한 어머니들입니다. 그리고 그 족보의 마지막 1.16 에, 정혼자였던 요셉과 동거하기 전에 이미 요셉의 씨가 아닌 아기 예수를 임신했던,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언급됩니다.
"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가 태어나셨다." ( 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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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주년신약성서 요한복음 제8장
3 그 때에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자를 데려와 가운데 세워 놓고
4 그분에게 말하였다. "선생님, 이 여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5 율법에서 모세는 이런 여자들은 돌로 치라고 우리에게 명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6 그들은 예수를 고발할 구실을 얻으려고 그분을 시험하여 이렇게 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7 그들이 계속해서 물으니 예수께서는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당신들 가운데서 죄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시오."
8 그리고 다시 몸을 굽혀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9 그러자 듣고 있던 사람들은 나이 많은 이들을 비롯하여 하나하나 떠나가 버리고 예수만 남게 되었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있었다.
10 그 때 예수께서 몸을 일으켜 여자에게 "부인, 그들이 어디 있소? 아무도 당신을 단죄하지 않았지요?" 하고 말씀하셨다.
11 여자가 "아무도 안했습니다, 주님"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당신을 단죄하지 않습니다. 가시오.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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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음 현장에서 붙잡혀 예수 앞에 끌려온 여인"에 대한 요한복음의 이 인상 깊은 장면은 무척 특별한 전승사를 지닙니다.
성서학자들의 조사와 탐구를 따르면 요한복음의 이 유명한 이야기는, 초기의 복음서 사본이나 기록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고 오직 독립된 구전전승으로만 외톨이로 전해 내려오다가, 4 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일부 요한복음 사본들과 루까(누가)복음의 한 사본에 삽입되었다고 합니다.
( * 참고 : Stephan Mitchell, The Gospel according to Jesus, HarperPerennial 1993, Paperback, ISBN 0-06-016641-X, p.59 )
그럼에도 요한복음의 이 이야기는, 예수께서 몸소 행동과 모범으로 가르치신 용서, 그리고 죄 지어 곤경에 처한 여인에 대한 예수님의 인간적 연민과 동정이 무척 생생하게 드러나, 읽는 이에게 깊은 감동을 주며, 또한 역사적으로 일어난 실제 사건에 대한 기억과 그 특징들이라 할 만한 유일회적 정황들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
마치 주눅들어 짓쩍어하는 어린 아이처럼 땅바닥을 내려다 보며 쪼그려 앉아 손가락으로 땅을 긁적이는 예수의 행동이 무척 예외적입니다. 바로 그래서 더더욱 역사적으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구체적 기억이 담긴 듯하고, 또한 예수의 이런 의기소침하고 소극적인 태도는 모든 복음서 기사들 안에서 거의 유일회적인 모습이어서, 인상깊고 생소해 보이기까지도 합니다. ( 예수의 이런 자신없고 주저하는 모습을 용납할 수 없었던 후대의 복음서 사본 편저자들 중 일부는, 예수가 그곳에 몰려온 남자들이 지은 죄나 그들이 간통했던 여인의 이름들을 땅바닥에 보란 듯 써보이셔서, 오히려 그 고발자들을 주눅들게 하고 곤경에 빠뜨리셨다는 식의 억지 구절을 이곳에 삽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님이 그런 의미에서 全知하고 그런 식으로 간교한 분이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예수의 적대자들은 예수의 출신 성분에 대한 스캔들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집요하고 잔인하게 걸고 넘어졌을 것입니다. 그들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들린 여인을 예수 앞에 끌어다 놓고, 그들이 바로 간음으로 태어난 더러운 사생아라고 천시하고 백안시한 예수를 몰아 부친 것입니다 :
"이 여인이 간음했으니 모세의 율법에 따라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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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주년신약성서 요한복음 제8장
12 예수께서는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 나를 따라오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오히려 생명의 빛을 얻을 것입니다."
13 그러자 바리사이들이 예수께 "당신은 당신 자신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군요. 당신의 증언은 참되지 못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내 자신에 대하여 증언한다 해도 내 증언은 참됩니다. 그것은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15 당신들은 사람의 기준을 따라 심판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습니다.
16 그러나 내가 심판을 한다 해도 내 심판은 참됩니다. 그것은 내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17 당신들의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은 참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8 바로 내가 나 자신에 대하여 증언하는 이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내게 대하여 증언하고 계십니다."
19 그러자 그들은 예수께 "당신의 아버지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당신들은 나를 알지 못할 뿐더러 나의 아버지도 알지 못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알았다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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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의미의 민주화와 보편적 인간 평등사상이 인정되고 또 불완전하나마 실천되기 이전의 모든 문명권과 사회 안에서처럼, 예수 시대의 유대사회에서도 '사생아'는 철저하게 멸시받았으며, 전혀 사람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사생아들은 다른 정상 이스라엘인들과 결혼할 수 없었으며,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도 특별한 지파로 여겨지던 성직자 가계와는 그 서손들과 조차도 혼인할 수 없었습니다. 사생아는 공직자가 될 수 없었고, 사생아가 법정의 판결에 관여한 것이 드러나면 그 판결은 무효처리 되었습니다. 1 세기 후반의 이스라엘에서는 사생아들이 그 생부로부터 그래도 일정의 유산 만큼은 받아도 좋을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심했습니다. 사생아와 그 가족이, 선택된 이스라엘 민족의 일원으로 과연 신의 구원을 받을 수는 있을지 열띤 사회적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사생아'는 사회의 치부였고 집단적 저주와 모멸의 대상이였습니다. ( * 참고 : Stephan Mitchell, The Gospel according to Jesus, HarperPerennial 1993, Paperback Edition, ISBN 0-06-016641-X, p.25 )
간음하다 붙들려 온 여인에 대한 요한복음 기사 후반에서, 예수를 혹평하는 이들은, 예수께 (사생아인) "당신이 당신 자신에 대해 증언하니, 당신 증언은 참되지 못하다.( 8.13 )" 즉, 거짓이며 무효라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당신의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8. 19 ) 곧, 당신은 아비없는 자식, '사생아'(이다, 닥치고 가만히 있으)라고 예수를 윽박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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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주년신약성서 마르코복음 제6장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당신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따라갔다.
2 그리고 안식일이 되자 그분은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듣고는 놀라 이렇게 말하였다.
"이 사람이 어디서 힘을 얻어 이런 일을 하는가? 이 사람한테 내린 지혜는 어떤 것일까? 그의 손으로 이런 기적들이 이루어지다니?
3 이 사람은 고작 장인이며, 마리아의 아들로서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또한 그의 누이들도 여기서 우리와 함께 지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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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꼬( 마가 )복음의 이 기사를 따르면, 예수의 고향사람들은 예수를 '마리아의 아들'로 불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람 이름을 부를 때 일반적으로 그 아버지의 이름을 함께 불렀습니다. 예를 들어,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하는 식으로 아버지 '알패오'와 아들 '야고보'의 이름을 함께 부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요셉'이 아닌 '마리아의 아들'로 부르는 것은, '아버지도 누군지 모르는 천한 사생아', '아비 없는 자식', '호래자식' 이라는 투의 욕설이나 멸시적 호칭이 됩니다. 예수의 고향사람들은 사생아로 여겨 천대하고 모멸하던 예수를 '스승'이나 '예언자'로 인정하고 우러르거나, 그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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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주년신약성서 마르코복음 제1장
1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2 예언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 심부름꾼을 너보다 먼저 보내니 그가 네 길을 닦아 놓으리라.
3 광야에서 부르짖는 이의 소리니라.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고 그분의 굽은 길을 바르게 만들라!'" 고 기록되어 있는 대로
4 세례를 베푸는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죄를 용서받기 위한 회개의 세례를 받으라고 선포하였다.
5 그래서 온 유대 지방 주민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로 나가서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물에서 세례를 받았다.
..... (중략) .....
9 그 무렵의 일이다. 예수께서는 갈릴래아 나자렛으로부터 오셔서 요르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10 그리고 즉시 물에서 올라오시면서 보시니, 하늘이 갈라지고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에게 내려왔다.
11 이어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울려 왔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나는 너를 어여삐 여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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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복음의 저자가 예수의 족보로 자기 복음서를 시작한 것과는 달리, 마르꼬( 마가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활동에 대한 기사, 그리고 예수가 그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일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회개할 것을 호소하고,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용서를 받으라고 한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 예수는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았고, 바로 그 '용서-세례'의 순간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나를 너를 어여삐 여겼노라"하는 하늘의 소리를 듣습니다.
사생아, 곧 아비없는 자식으로 철저한 사회적 저주와 주변의 모멸과 천대 속에 성장하고 생활했던 예수가, 세례자 요한의 세례(침례)를 받아, 요르단강의 차고 어두운 물속에 잠겼다 올라오며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젖은 얼굴과 온몸에, 신선한 공기와 하늘의 밝은 날빛을 받습니다. 그 순간 예수는 인간과 사회의 우매하고 못난 관행과 잔인하고 못된 편견을 단번에 상대화하고 눈 녹듯 무효화하는, '무한한 용서-용납과 아버지다운 절대 사랑'을 체험합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나는 너를 어여삐 여겼노라." ( 1.11 )
그리고 요한복음 8.15~16 ; 19 에서, 적대자들의 무시와 혹평에 맞서 예수는, 자기를 무조건 용납하고 무한히 사랑하는 아버지( 하느님 )에 대한 자신의 확신을 당당하게 고백하고 선포합니다.
15 당신들은 사람의 기준을 따라 심판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습니다.
16 그러나 내가 심판을 한다 해도 내 심판은 참됩니다. 그것은 내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 (중략) ....
19 ....... "당신들은 나를 알지 못할 뿐더러 나의 아버지도 알지 못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알았다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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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스스로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었습니다. '아비없는 자식'으로 주변 사람들과 당대 사회에서 '사생아'요 '호래자식'으로 천대받고 무시당하던 그를, 만약 하느님마저 당신의 귀하고 특별한 아들로 여기며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런 하느님을 예수가 뭐하러 믿어야 합니까?
예수의 '神子性 - 곧 하느님 아들이심'에 대한 서구 그리스도교의 전통교리와 믿음은, 현대 한국사회 안에서마저 인간 예수의 절대신성(神性)에 대한 억지 믿음과 황당 교리로 고착-고수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 사회 안에서 높은 지위와 신분, 명망과 부와 권력을 누리는 그럴싸한 그 누구가 아닌 '사생아 예수', '호래자식 예수'가 바로 '하느님이 선호해 특별히 사랑한 당신의 아들'이었다는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믿음은, 인간의 보편적 평등과 생명 존엄의 메시지, 그리고 그 사회적 구현, 곧 우리 사회 안 불우 이웃에 대한 기본적 복지 배려, 어려움과 고통 안에 있는 모든 생명에 대한 연민 -- '공존과 사랑의 실천 동력'으로 구체화되어 살아나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그럴 때만 한국 그리스도교는 합리성과 이성을 거스르지 않아 여전히 유효하며, 현대 한국사회 안에서도 '믿고 따를 만한 종교와 신앙'으로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
-- 샬롬, 평화를 빕니다! 박인영, 미사엘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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