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 아름다운 날개
*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허구이며, 사실과 유사하다면 우연의 일치입니다. 묘사된 자연환경과 동물의 생태는 자연과학적 연구결과와 관찰보고를 참고로 하였으나 그것들과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Image, from 'Fantagia' by Walt Disney [ 소설 ] 아름다운 날개 박인영 ( misaelpark@gmail.com ) copyright © Misael Park 사무엘은 몸을 떠난 순수한 정신이었다. 그의 몸은, 정확히 말해 그의 몸이었던 것은 어린이 놀이터의 미끄럼틀 아래 모래밭 위에 마치 서양 배우가 잠든 모습을 연기할 때처럼 여전히 엎드려 있었다. 자신의 뒷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은 생소하고 어색하기만 했다. 미끄럼틀에서 20 미터 떨어진 곳에는 아홉 살에서 열 살 사이의 세 명의 사내아이들이 놀이터의 늑목에 등을 기대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그들 중 한 아이가 갖고 온 새로 나온 휴대용 전자오락기의 게임에 폭 빠져 있었다. 아이들이 그토록 꿈꾸어 왔던 외계인의 탐사선이 놀이터의 한가운데에 착륙해서 지구의 토양을 채취한 후 다시 모선으로 이륙을 한다 할지라도 이 순간 사내아이들의 주의를 전자오락기의 새로운 게임에서 떼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등나무덩쿨을 올려 그늘지붕을 만들고 그 아래에 붙박이 긴의자와 석재 탁자를 놓은 놀이터의 이쪽, 소년들의 맞은편에는 네 명의 여자아이가 아까부터 지치지 않고 낭랑하고 빠른 목소리로 노래하며 복잡한 발놀림과 경쾌한 뜀뛰기의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었다. 여자아이들은 전자오락기 게임을 하고 있는 자기들 또래 세 명의 소년, 특히 동네에서 가장 인기있는 그 중의 한 남자아이에게 온통 마음이 쏠려 있었다. 소녀들은 남자아이들 쪽으로 절대 시선을 주지 않고 조금은 흥분한 채 열심히 고무줄놀이를 하느라 자신들이 얼마나 힘들고 숨이 찬지도 잊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여자아이들 역시 놀이터의 미끄럼틀 근처에 있던 젊은 부부와 한 어린아이에게 일어난 일을 전혀 목격할 수 없었다. 사실 그 일은 너무나 순식간에 그리고 아무런 소리없이 일어났다. 그래서 더 이상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제약에 매이지 않게 된 사무엘 스스로도 사태의 실상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혹의 감정이 가라앉고, 자신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고자 하는, 객관적인 호기심이 섞인 의문을 그의 정신이 갖게 되자 - 다시 말해 그의 존재는 순간적이나마 객관적인 호기심 그 자체였다 - 시간과 공간의 구조가 곧 스스로의 질서를 열어보이며 반응해왔다. 문제의 핵심은 결국 마음이 지향하는 바의 순수함과 온전함에 있었던 것이다. 흐르는 세월과 항상 우호적이지만은 않은 타인과 환경속에서 지키고 가꾸며 갖은 신경을 써야 할 소유물처럼 여겼던 애욕의 육신을 벗어났으므로, 사무엘의 정신이 순수한 관찰자가 되는 데에는 그가 자신의 새로운 존재규정에 미숙하다는 사실을 빼고는 아무런 장애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모든 기억과 욕망 - 내밀한 의도와 부끄러운 공상들이 숨김없이 드러났고 다양한 생을 두고 되풀이하여 사로잡혔던 업보의 많은 표정과 지워지지 않는 인연의 얼굴들을 보았으며, 그가 삶에서 배운 지혜와 웃음, 성취와 좌절, 환희와 슬픔, 애욕과 고독, 비겁과 용기, 무료와 권태, 굴욕과 분노의 온갖 체험들이 담담하게 상대화되었다. 스스로를 내세우고 변명하고 합리화하거나 갖은 수단으로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모든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 대우주와 시공의 구조에 여과없이 편입되었다. 그것은 조금도 잘잘못을 묻지 않는 너그럽고 단호한 수용이었다. 대신에 그는 별들의 탄생과 은하의 소멸을 보았으며 폭발하는 초신성의 타오르는 불꽃이 되어 어두운 우주를 밝혔다. 그는 영겁의 진화를 통해 존재의 궁극을 꿰뚫은 우주적 지성의 참된 일부였으며 태초이전의 절대허무였다. 그는 모든 것 - 모든 인간과 동식물, 갖가지 생명과 물질이 되었고, 생과 사의 배후에 있는 암흑과 익명의 모든 세력과 존재의 온갖 형태들과 공존하며 그들의 일부가 되어 모든 것 안의 모든 것이 되었다 : 한없는 대양은 인간의 귀에 들리지 않는 갖가지 노래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 이동하고 있는 범고래 무리의 인솔자는 '삼각등 할미'로 불리우는 나이가 예순 살이나 된 암컷으로 세 마리의 성년 수놈과 다양한 연령층의 암놈 열다섯 마리 그리고 태어난지 1 년 미만의 새끼고래 세 마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노래 전체 소절을 굳이 사람의 언어로 옮기자면 '자비로운 생선주의자 삼각등 할미'였는데, 이것은 그녀가 수염고래나 돌고래 등 범고래와 가까운 친족관계에 있는 동물 뿐 아니라 추운 지방의 연안 바다에서 쉽게 사냥할 수 있는 물개와 같은 바다포유류나 바닷새들도 여간해서는 먹이로 사냥하기를 꺼렸기 때문에 동료들이 붙여준 이름노래였다. 지금은 이미 들리지 않는 곳으로 돌아간 그녀의 엄마가 그녀에게 지어준 본래의 이름노래는 '수놈같은 삼각 등지느러미; 소리(존재)가 아닌 것을 묻는 아이'였다. 그녀는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출생의 충격을 겨우 극복했을까 말까 했던 아주 어린 시절에 정색을 한 심각한 음조와 리듬으로 다음처럼 노래했었다: "엄-마 엄-마-, 사랑하는 나의 엄-마-, 만약에 만약에 아무것도 들리지(존재하지) 않는다면, 나 와 엄마와 이 바다는 어느쪽에서 어떻게 들릴까요(있나요)?" 인간이 지각하여 받아들이는 삶의 정보가 대부분 시각적이거나 시각정보의 영향을 받아 변형된 것이라면 범고래들은 소리와 그 간섭으로 이루어진 끝없는 음파의 물결 속을 헤엄치며 살고 있다. 물론 어린 고래와 그 보호자의 관계에서 그리고 짝짓기 의식 중인 연인 고래들 사이에서 잘 알 수 있듯이 다정한 애무와 피부 끼리의 부드러운 접촉이 존재하지 않는 범고래의 삶은 상상도 할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것을 결정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인간이 아직 해독하지 못한, 다양한 주파수로 부르는 노래언어였다. 인간을 위시한 다른 많은 동물에게는 거의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는 시각은 범고래에게는 지극히 부수적인 보조 감각기능에 불과했다. 범고래는 아주 낮은 음으로부터 주파수가 20 만 헤르츠에 이르는 최고음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양한 소리를 내고 또 들을 수 있다. 범고래는 스스로 발사한 여러가지 주파수 소리의 반향을 들음으로써 그 소리가 부딪힌 물체의 모양, 크기, 자신과의 거리, 물체의 두께와 재료의 질, 표면의 거칠기 등을 알 수 있고, 나아가서 그 물체가 정지해 있는지 혹은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이동하고 있는지도 알아낸다. 범고래는 1000 분의 1 초 라는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이 내는 소리의 주파수를 바꿔가며 멀리 있는 물체와 까까이 있는 물체를 동시에 탐색할 수도 있고, 대충의 모양을 탐지하거나 물체의 미세한 부분을 선별하여 아주 자세히 관찰할 수도 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에는 스스로도 빠른 속도로 헤엄치고 있는 것이 보통이므로 자신의 속도와 움직임을 감안해서 반향음을 보정하여 알아듣는 계산도 해야한다. 게다가 자신이 낸 소리 뿐 아니라 동료들의 소리와 그 반향음까지도 모두 한꺼번에 듣고 주위의 사태와 정황을 단숨에 이해하고 판단해야 한다. 범고래는 이 모든 작업을 아무런 당황함없이 순간적으로 해내며, 어떤 해양생물학자는 사람의 태아가 이미 엄마의 뱃속에서 밖의 소리와 엄마나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바깥세상을 익히기 시작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범고래의 새끼 역시 어미의 뱃속에서부터 자신의 삶에 그토록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발성,청각기능 곧 다양한 주파수의 음을 내고 받아들이며 분석하는 훈련을 시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기도 했다. 범고래의 세상은 신비로운 음과 리듬의 끝없는 물결이다. 물개나 바닷새를 사냥할 때 그리고 수염고래나 돌고래의 무리를 습격할 때 '삼각등 할미'를 주저하고 꺼리게 만드는 사냥감들의 처절한 비명소리와 절망적인 몸부림의 파장을 다른 범고래들이라고 전혀 감지하지 못하란 법은 결코 없었다. 또 '삼각등 할미' 자신에게도 범고래가 아닌 다른 생물들의 고통과 죽음의 비명이 성년의 동료나 어린 범고래가 당한 일처럼 짙은 연민과 동정이 느껴지는 그런 일은 분명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범고래의 언어노래와 비슷한 노래를 부르고 위기의 상황에서 범고래와 거의 같은 절망의 몸놀림 파장을 보내오는 수염고래나 돌고래를 잡아먹는 일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한사코 피하고 싶은 것이 '삼각등 할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중요한 해류와 먹이가 되는 물고기나 오징어 떼의 회유로를 기억해두고 그것을 잘 고려하여 이동시기와 경로 그리고 다른 가족들과의 연례모임을 계획한다면 굳이 수염고래나 돌고래 혹은 바닷새들이나 물개를 습격해 잔인한 살육의 파티를 벌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오늘 오전의 일만 해도 너무나 끔찍해서 다시 기억하기도 싫었다. 아침에 '삼각등 할미'의 식구들은 해류와 함께 해안선을 따라 올라오는 연어 떼 사냥을 나갔었다. '삼각등 할미'와 나이든 암놈고래 몇이서 나머지 가족들이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는 육지 쪽의 막다른 만 안으로 연어떼를 애써서 몰아넣고 보니 그곳에는 이미 뜻밖의 일이 벌어져 있었다. 낯선 고래들 한 패거리가 몰려드는 연어 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개 사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닐곱 마리의 수놈고래들이 십대 특유의 불량기 섞인 몸짓과 노래로 하도 버르장머리 없이 구는 바람에 '삼각등 할미' 무리의 성년 수놈 세 마리 마저 평소와 달리 잔뜩 기가 죽어 있었고 어린 새끼를 돌보는 젊은 어미들은 어미들대로, 또 어린 고래들은 그들대로 모두 새파랗게 질려 쩔쩔매고 있었다. 사실 그것은 먹이사냥이라기 보다는 변태적이고 잔인하기 짝이 없는 폭력과 살육의 아수라장이라고 해야 옳았다. 바닷물엔 더운피 동물의 비릿한 피맛이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잡힌 물개들을 공놀이를 하듯 입으로 물어 하늘 높이 던져올렸고, 물개들은 그때마다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한사코 헤엄쳐 도망치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면 고래들은 십 미터도 훨씬 넘게 한껏 폼을 내며 물보라와 함께 수면에서 솟구쳐 올라와 아래로 철썩 다이빙을 하며 불쌍한 물개들을 다시 낚아채곤 했다. 그들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와 호기로운 고함에는 '삼각등 할미' 무리 속의 젊은 암놈고래들을 겨냥한 어리석은 자기과시가 한껏 담겨 있었다. 과도한 부상, 지나친 출혈과 기진으로 더 이상 팔팔하게 도망치지 못하는 어떤 물개들은 그냥 버려진 채 여기저기 파도 위를 떠다니며 신음하고 있었다. 수놈고래 패거리는 전혀 배고프지 않음이 분명했다. 분노한 '삼각등 할미'와 연어몰이에서 함께 돌아온 다른 나이 든 암컷들이 그 패거리를 꾸짖으며 앞으로 나섰다. 기죽어 있던 세 마리의 어른 수놈들도 흔들린 위신과 자존심을 만회하려는 듯 위협의 몸짓과 큰 소리로 합세했다. 할 수 없이 물러나면서도 그 난폭한 십대들은 낯선 어른 고래들이 자신들을 실제로 어쩌지는 못하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삼각등 할미' 일행이 애써서 몰아온 연어 떼를 닿는대로 마구 휘저어 흩뜰어 놓으며 겨우 먼바다로 물러갔다. 그중 몇은 그 와중에도 그냥 물러서기가 아쉬웠던지 수면 위로 솟구쳐 올랐다가 다시 바닷속에 뛰어들며, 물위로 나온 꼬리와 아랫도리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한참동안 흔들어 보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몸짓과 어른 건달들을 흉내낸 유혹의 휘파람이 너무나 음란하고 노골적이어서 늙은 암놈고래들마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외면을 하며 민망한 한숨들을 쉬었으니 어린 암컷들에겐 보통 충격적인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 수컷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여기저기 떠다니는 다친 물개들을 재빨리 낚아채 허겁지겁 삼키기 시작했다. 듣기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게해서라도 그 불쌍한 짐승들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삼각등 할미'는 그들을 말리고 싶지도 않았다. 한바탕의 소란이 거의 끝났을 무렵 '삼각등 할미'는 식구들중에 낯선 암컷 하나가 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겨우 사춘기를 넘겼을까 말까 한 나이였고 그녀의 행색으로 미루어 아까의 난폭한 십대들 무리에 끼어 있었던게 분명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불규칙적인 식사와 무리한 이동, 건강하지 못하며 문란한 생활을 해온 젊은 암놈고래가 지닐 수 있는 모든 특징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어린 암컷은 그 여윈 몸으로 임신까지 하고 있었다. '삼각등 할미'는 그녀를 보자 어릴 때 십대 수놈들의 유혹을 좇아 어느날 갑자기 무리를 떠나간 손위 언니 생각이 났다. 그후로 식구들은 다시는 그녀를 만날 수 없었던 것이다. 가족들의 걱정, 특히 엄마의 슬픔은 노래로 표현할 수도 없었다. 몇몇 나이든 암고래들이 그리 달가와 하지 않았지만 '삼각등 할미'는 임신한 어린 암컷을 무리 안에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무리의 지도자인 '삼각등 할미'를 후견자로 갖게 된 새 암컷은 빠른 속도로 공동생활에 적응했고, 어린 새끼들 때문에 잠시도 쉴 틈이 없는 젊은 어미들은 오히려 지나치다시피 싹싹하게 굴며 육아를 돕고 배우려드는 그녀를 마다할 까닭이 없었다. '물개의 비명으로 가득 찼던 바다에서 나온 아이'로 불리우게 된 어린 임산부는 '삼각등 할미'를 친엄마처럼 따랐고 '삼각등 할미' 역시 그녀를 친딸처럼 돌보아주었다. 무리 안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며 건강을 회복하고 몸무게도 많이 늘은 '물개의 비명'은 그후로 반년의 세월이 흐른 뒤 앞이마에 알록달록한 바둑무늬가 있는 건강한 어린 수놈을 해산했다. '바둑이 이마'는 엄마인 '물개의 비명'은 물론 '삼각등 할미'와 다른 모든 암컷들의 귀여움을 한몸에 받으며 활기차고 의기양양하게 성장했다. 태평양의 많은 고래들은 효과적인 다랑어잡이를 위해 인간이 고안해낸 몰인정한 어획방법의 운나쁜 희생자였다. 다랑어는 큰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연어와 같은 중형 물고기들을 습격해 먹어치우는 대형어족으로, 범고래와 같은 큰 이빨고래는 바닷속에서 사는 그들의 드문 천적중에 하나였다. 인간의 어선은 다랑어 떼를 발견하면 거대하고 강력한 어망으로 직경이 수백 미터나 되는 수역을 완전히 둘러쳐서 다랑어 뿐만 아니라 돌고래와 같은 소형의 이빨고래, 물개, 멸종의 위기에 있는 희귀종의 바다거북, 상어, 미처 피하지 못한 갖가지 바닷새 등 그안에 갇힌 모든 살아있는 동물을 싹쓸이하는 사냥법을 썼다. 지난날 다랑어 떼가 몰리는 해역에서 어선의 선단과 몇 번 조우한 경험이 있는 '삼각등 할미'는 항상 이러한 위험에 신경을 써왔다. 경계의 임무를 맡은 나이든 암컷으로부터 다랑어잡이 어선의 접근을 보고받은 '삼각등 할미'는 다랑어 사냥에 여념이 없는 식구들을 마구 몰아세워, 수면 위에서도 눈에 잘 띄는 평소의 요란한 물뿜기 호흡을 자제하고, 대신 이마 위에 난 호흡구가 겨우 수면 위로 나올 정도로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조용히 그러나 재빨리 헤엄쳐 자신의 뒤를 따를 것을 엄하게 명령했다. 사냥과 포식의 즐거움을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일시에 빼앗긴 가족들은 몹시 투덜거리면서도 그녀의 지시를 잘 따라주었다. '삼각등 할미'는 다랑어잡이 어선의 오른쪽 방향으로 식구들을 우선 이끌어 내었다. 그녀는 어선 위의 크레인 등 어망을 조작하는 장치가 보통 배의 좌현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따라서 바다 위에 큰 호를 그렸다가 순식간에 죄어 들어오는 어망에 갇히지 않는 유일한 길은 어망이 그리게 될 죽음의 원주 바깥쪽, 즉 배의 우현쪽 바다로 미리 나가있는 것이다. 다랑어잡이 어선의 시야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삼각등 할미'는 무리의 다음세대를 위해, 어선의 위험성과 그 치명적인 위협으로부터 도피하는 법을 식구들에게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물개의 비명'은 '바둑이 이마'를 무리 안에서 찾을 수 없어 애를 태우며 계속 아들의 이름노래를 불러대고 있었다. 그 노래 안에는 이미 일상의 침착함을 잃은 당황과 절망의 음조가 섞여 있었다. 다랑어 사냥 중에 '바둑이 이마'는 젊은 암컷들과 함께 있었고 그의 어미인 '물개의 비명'은 요즘들어 부쩍 쇠약해진 한 마리의 할머니 고래 옆에 붙어 헤엄치며 늘 하던대로 그녀를 시중들고 있었다. '삼각등 할미'의 갑작스런 도피 명령은 아줌마와 누나들의 찬사와 격려의 노래에 우쭐하여 다랑어 떼의 한가운데를 휘젓고 다니며 의기양양해 있던 어린 '바둑이 이마'에겐 미처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소리없이 재빨리 이루어진 도피의 와중에서 어이없게도 주위의 어른 암컷들 중엔 아무도 '바둑이 이마'를 맡아 그를 친자식처럼 책임진 보호자가 없었다. '바둑이 이마'의 현재 거취에 대한 불길한 추측이 - 엄밀히 말해 확신에 가까왔다 - 이심전심으로 퍼져나가 온 식구들을 순식간에 자괴의 당혹과 슬픔으로 몰아넣었다. '물개의 비명'이 엄마를 부르며 격하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평소에 그녀는 '삼각등 할미'를 어머니라 불렀지만 지금 그녀가 오열하며 부르는 엄마는 분명 이 무리 안에 있지 않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녀의 처절한 울음노래가 '삼각등 할미'의 늙은 마음을 갈갈이 찢었고, 옆에서 재롱부리던 '바둑이 이마'의 총명하고 귀여운 몸놀림 파장과 또랑또랑하고 앳된 노래를 떠올리자 '삼각등 할미'는 더 이상 가만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함께 무리를 이끌어왔던 손아래 사촌누이에게 모든 것을 부탁하고 '물개의 비명'을 포함해서 그 어떤 고래도 그녀를 뒤따라서는 안된다는 엄명을 내린 후에 다랑어잡이 어선쪽으로 몸을 돌려 헤엄쳐나갔다. '바둑이이마'는 죄어 들어오는 어망의 원 안에 갇혀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며 마구 몸부림치는 다랑어떼의 한가운데에 파묻혀 있었다. 그는 아직도 어망의 치명적인 위험은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른 고래들의 노래와 완벽하게 단절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리고 미친듯이 날뛰는 다랑어들 때문에 노래로는 표현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바둑이이마'를 구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은 처음부터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삼각등 할미'는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온 힘을 다해 수면 위로 솟구쳐 올랐다 떨어지며, 바다 위에 원을 그린 어망의 한 쪽을 자신의 거대한 몸으로 깔아 수면 밑으로 끌어내렸다. 그녀의 탄력있고 매끄러운 피부에 날카로운 어망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예리한 칼날처럼 파고들었다. 온몸의 여기저기가 어망에 쓸려 갈라지는 고통 속에서도 '삼각등 할미'는 우선 '바둑이 이마'를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그녀는 할머니가 이제 널 찾아냈다는 식으로 마치 우리가 여태껏 숨바꼭질이라도 하지 않았냐는 듯한 시늉을 했다. 그리고 네가 할머니의 몸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 내기를 하자며 '바둑이 이마'의 소년다운 자존심을 건드리는 노래도 불렀다. '삼각등 할미'는 피부에 닿는 더욱 심한 고통을 무릅쓰고 자신의 몸이 어망이 그린 원주의 일부가 되도록 몸을 틀었다. 날뛰는 다랑어들에게 여기저기 얼굴과 몸을 얻어맞아 얼이 빠지도록 놀라있는 '바둑이 이마' 앞에 불쑥 나타난 할머니의 어이없는 놀이 제안에는 그냥 어리광을 부리며 투정을 하고 울음을 터뜨려서는 안될 것 같은 어떤 절박함이 들어 있었다. '바둑이 이마'는 자신도 모르게 서둘러 할머니의 몸통을 펄쩍 뛰어넘었다. 할머니는 지금 물밑으로 몸을 거의 잠그기까지 했지만 사실 다른 아줌마들이나 엄마하고 같은 놀이를 했을 때는 그녀들의 몸이 물위에 완전히 나와 있기가 예사였으므로 이쯤이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다랑어들에게 얻어맞아 얼굴이 좀 얼얼한거나 엄마와 아줌마들을 잃어버렸던 방금 전의 갑작스런 놀람과 서러움이야 굳이 할머니가 아니어도 나중에 엄마 품에 안겨서 한바탕 울어버리면 풀 수 있는 일이었다. "이 바다에서 가장 튼튼하고 씩씩한 가장 사랑하는 용감한 우리 아가, 이제 엄마한테 누가 누가 먼저 가나 할머니랑 아가랑 시합할까? 자, 우리 엄마 어디 있지? 우리 엄마 저기 있네! 자, 아가랑 할머니랑 누가 먼저 가서 우리 엄마 깜짝 놀래줄까? 어, 왜 그러고 있어, 할머니가 먼저 갈까?" 그러자 '바둑이 이마'는 단 한번도 뒤쪽으로 귀기울이지 않고 단숨에 엄마를 향해 쏜살같이 헤엄쳐나갔다. 비록 잠시였지만 혼자 버려졌었다는게 갑자기 새삼 두려워져서 우선 그 무엇보다 엄마에게 빨리 가서 한바탕 때를 쓰며 울고 싶었고, 무언가 보통때와 많이 다르기는 했지만 아뭏든 헤엄치기 시합에서 할머니에게 지기도 싫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바둑이 이마'는 자신을 그토록 귀여워했던 할머니가 갑자기 들리지 않는 곳으로 사라진 이유가 그날 자기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기 때문이었다는 걸 깨닫게 될 터였다. 온몸에 복잡하게 휘감겨 죄어든 어망에서 '삼각등 할미'가 자력으로 풀려나기란 불가능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다랑어잡이 어선의 선원들이 망원경을 들고 갑판으로 나와 우와좌왕했으나 어망에 형편없이 감긴 채 요동치는 거대한 범고래를 풀어낼 별다른 수단은 없었다. 선원들은 기계로 당겨올리던 어망을 다시 풀어 내려야만 했고 그것은 곧 이번 어획의 대부분을 포기해야 한다는 걸 의미했으며, 나아가 애써 발견한 황금같은 다랑어 떼를 뻔히 눈앞에 두고도, 시간을 들여 값비싼 새 어망을 장착해야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랑어잡이 어선의 젊은 선장은 자신의 불운에 몸서리쳤다. 그리고 출항이후 경험없는 젊은 선장의 권위와 운세를 알게 모르게 계속 비아냥거리던 나이 많은 다국적 선원들의 거칠고 우매해 보이는 얼굴들을 마주 대하자 다시 한 번 스스로의 한심한 처지에 울화가 치밀었다. '삼각등 할미'가 비록 온몸의 피부 여기저기가 그물에 쓸리고 갈라지기는 했지만, 느슨해진 어망의 뒤엉킨 실타래 밖으로 마치 기적처럼 몸을 빼어 필사적으로 헤엄쳐나왔을 무렵, 출처를 알 수 없는 맹목적이고 사악한 분노가 젊은 선장을 사로잡았다. 그는 조난시의 구조신호용으로 조타실 안에 비치해 있던 조명탄 발사총을 들고나와, 막 배의 옆을 스칠 듯이 빠져나가는 범고래를 내려다보고 어디 한 번 직격탄 맛 좀 보라는 듯 가학적인 쾌감에 사로잡혀 정신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것은 고래를 보호하도록 한 1982 년의 국제적 협정을 정면으로 위반한 명백한 범죄행위였을 뿐 아니라, 그 추악한 행위의 주체가 인간들 중 선택받은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고급 직업 훈련과 품성 교육을 받은 원양어선의 선장이었기에 분명 인간성의 도덕적인 궤멸과 추락을 뜻하는 일이었다. 발사와 함께 자동점화된 조명탄은 '삼각등 할미'의 오른쪽 등에 내려 꽂혔다. 조명탄환은 길이가 20 센티미터 굵기가 3.5 센티미터 되는 원통 모양의 막대로써, 비바람속에서나 차가운 바닷물속에서도 강렬한 빛을 내며 일정한 시간을 계속 탈 수 있도록 자체적으로 산소를 공급하는 특수 화공약품과 특별한 가연성 연소물질로 만들어져 있었다. 불붙은 조명탄은 '삼각등 할매'의 젖은 피부를 뚫고 들어가 오른쪽 등근육에 30 센티미터 깊이로 단단하고 깊숙하게 박힌 채 꺼질 줄 모르고 계속 타들어갔다. 그러자 차가운 바닷물속에서 살며 때로는 장시간 동안 잠수할 수 있도록 까마득한 선조로부터 오랜 세대의 진화를 거듭한 끝에 이루어진 '삼각등 할미'의 생체구조와 특장들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끔찍한 비극을 초래했다. '삼각등 할미'의 근육속에 산소를 풍부하게 저축해준 미오글로빈이라는 검붉은 색소 그리고 체온을 유지하고 헤엄치기에도 알맞도록 체형을 유선형으로 만들어준 피부 밑의 두꺼운 지방층, 이 모든 것이 교묘한 우연의 일치로 일사분란하게 서로 작용하며 연소의 아주 효과적인 매질 기능을 수행했다. 조명탄이 박혀 환하게 불꽃을 튀기며 타고 있는 곳의 피하지방은 거의 액체상태가 되어 지글지글 기름이 끓었고 그 주위를 동심원상으로 하여 차츰 생체조직이 덜 손상을 입고 온도도 낮은, 체온의 등고선이 형성되었다. '삼각등 할미'의 등은 조명탄환이 꽂힌 곳을 중심으로 산 채로 조금씩 익어가며 연소했다. 그녀는 사흘 밤 사흘 낮을 말 그대로 살아있는 촛불이 되어 바다위에 표류했다. 그것은 지구라는 푸른 행성이 생겨난 이래 그 위에서 살다간 과거의 어떤 고등생물도 겪어본 적이 없는 잔혹하고도 긴 고문이었다. 가족 및 동료들과 친밀한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고등포유류가 갖춰 지니게 되는 다양한 감정과 활발한 정서의 변화, 확고한 자아의식, 삶과 체험의 의미를 묻는 철학적 감수성, 섬세하고 복잡한 신경조직과 예민한 피부감각, ..... 이처럼 생명진화의 계보 위에서 범고래 종족이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를 대변해주는 모든 지표들은 산 채로 불이 붙어 조금씩 생살이 타들어가는 '삼각등 할미'의 고통을 더욱 참을 수 없고 극명하게 첨예화시킬 뿐이었다. 그녀는 스스로의 목숨이 곧 끊어지기를 바라고 또 간절히 믿었지만 그녀의 소망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의식을 잃었다고 확신하며 염원했으나 그녀의 정신은 투명하도록 맑기만 했으며, 그녀의 등엔 그녀의 살이 녹아 끓어 끊임없이 연소하고 있었다. 처음에 그녀는 본능적인 절규와 발버둥질로 무작정 앞으로 앞으로 헤엄쳐나갔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 이상 능동적으로 헤엄칠 기력을 잃게 되자 해류의 흐름이 신음하는 그녀의 몸을 맡아 실었다. '삼각등 할미'가 조명탄을 맞은지 사흘이 지난 날 밤 해류는 혹독하고 집요한 고통에 거의 실성한 지경에 이른 그녀를 싣고 태평양의 알류샨 열도 남쪽 해역에 있는 알래스카 소용돌이의 가장 중심이 되는 수역에 도달했다. 소용돌이는 대양의 한가운데에서 유기적인 단일체의 성격을 지니며 나선형으로 회전운동을 하는 거대한 바닷물 덩어리이다. 격동하는 바다의 한가운데에서 소용돌이가 어떻게 다른 물결과 뒤섞여 허물어지지 않고 계속 스스로의 동일성을 유지하며 회전할 수 있는가는 대양이 간직한 태고의 신비 중의 하나이다. 학자들은 대양의 여기저기에 존재하는 소용돌이의 시원이 우주적 기원을 지닌다고 말한다. 소용돌이가 형성되는 힘은 지구의 자전에 의해 유발되는데, 행성의 자전은 우주의 먼지와 구름들이 태양계를 형성하기 위해 융합되던 원초적인 회전운동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결국 지구상의 대양에 있는 소용돌이들의 기원은 우주가 탄생된, 시간과 공간의 절대적인 출발점 곧 태고의 빅뱅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다. 아직도 목숨이 끊어지지 않았고 의식을 잃지도 못한 '삼각등 할미'가 새까만 한밤중에 해류에 실려 그 중심부까지 떠밀려 들어오게 된 거대 소용돌이는 북태평양, 찬 바다의 가장 큰 소용돌이였고, 시계바늘 반대방향으로 거대한 나선형 회전운동을 하고 있었다. '삼각등 할미'는 자신이 고통을 이기지 못해 확실하게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어쩌면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을 받는다네 고통을 받는다네 나는 끝없는 불의 고통을 받는다네 영원에서 시작되어 영원으로 이어지는 아! 한량없는 아픔 가없는 바다처럼 가없는 하늘처럼 나는 끝없는 고통을 받는다네 고통을 받는다네 고통을 받는다네 고통을 받는다네 나는 끝없는 불의 고통을 받는다네 모든 산 것들과 모든 죽은 것들의 아! 한량없는 아픔 가없는 심연처럼 가없는 어둠처럼 나는 끝없는 고통을 받는다네 고통을 받는다네 일찌기 범고래 무리를 이끌었던 그 어느 지도자보다 지혜로왔으며, 참된 용기가 있었고 모든 생물의 큰 어머니처럼 정이 많았던 '삼각등 할미'는 칠흑의 어둔밤, 알래스카 밤바다 거대소용돌이의 중심나선에 실려 대양의 바닥없는 심연 속으로 사라지며 이처럼 하염없이 노래했다 ; 그는 사바나의 끝없는 대초원을 달리는 야생 얼룩말의 힘찬 종마였다. 야구방망이보다 훨씬 크게 발기한 그의 페니스는 그해 들어 처음 발정한 어린 암말들의 부풀어 오른 질을 사정없이 짓쑤셨고, 감히 그에게 도전해오는 버릇없는 풋내기 수말들의 앞다리와 목줄기를 그의 무쇠같은 넙적이빨이 무자비하게 물어뜯었다. 굶주린 암사자 두 마리가 그의 이상적인 유전형질을 모두 받아 태어난 2 주 짜리 망아지를 얼룩말 무리에서 몰아 떼어내어 협공했을 때에, 한번도 져본 적이 없는 오만함 때문이었을까 얼룩말 무리의 지도자인 아름다운 종마는 어린 망아지와 암사자 사이에 서슴없이 뛰어들었다. 종마는 요란하게 침과 거품을 튀기며 코를 불고 분노의 갈기를 흔들었고 일찌기 어떤 초식동물도 성공시키지 못한 완벽한 도약과 전광석화와 같은 뒷발질을 해댔다. 다 잡은 먹이를 간발의 차이로 놓쳐버린 안타까움과 짜증에 순간적으로 판단력을 잃은 암사자 한 마리가 겁없이 그의 뒤에서 달려들다 피스톤처럼 내지르는 뒷발에 정통으로 턱을 얻어맞았다. 암사자의 턱뼈가 질그릇처럼 깨졌다. 날라떨어진 채 육식동물로서는 처음겪는 미지의 공포와 얼얼하고 화끈한 고통에 어쩔 줄 몰라하던 야생고양이는 이번엔 높이 들어올렸다가 떡메처럼 내려꽂히는 얼룩말 종마의 앞발굽에 옆얼굴을 찍혔다. 그 일격은 암사자의 코뼈를 여지없이 파열시키고 왼쪽 안구를 무참히 으깨놓았다. 다른 암사자 한 마리가 종마의 어깨근육에 갈고리같은 앞발톱을 꽂으며 뒤에서 매달렸다. 그러나 그것은 포식자다운 자신있는 행동이 분명 아니었고 차라리 궁지에 몰린 야생고양이의 다급하고 본능적인 자기보호 공격이었다. 흥분한 종마는 등위에 업힌 암사자를 마구 뛰고 흔들어 까불렸다. 분노한 얼룩말 종마와 당황한 어린 암사자의 그 이례적인 싸움은 사바나의 나무그늘을 어슬렁거리며 암사자들의 사냥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수컷사자 한 마리의 게으르기 짝이 없는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다. 수컷사자는 암사자의 무리를 거느리기 전 외롭고 고되었던 방랑의 시기 이후 까맣게 잊은, 목숨을 건 전투에 대한 유혹적인 두려움과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기대에 불현듯 몸을 떨었다. 온몸의 근육을 잔뜩 웅크린 수컷사자는 땅바닥에 배를 깔고 목표물에 접근해 적수를 관찰했다. 이윽고 찰나의 기회를 포착한 야생고양이가 무시무시한 포효와 함께 거대한 머리통을 마사이 사람들의 축제용 가면처럼 흔들며 솟구쳐 올랐다. 얼룩말 종마는 잔인한 암사자가 뒷목과 등의 가죽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헤집어 찢어대고, 그리고 목밑에 매달린 수컷사자의 송곳니가 목의 숨통에 돌이킬 수 없이 깊이 박혔음에도 불구하고 공포의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용맹스러운 종마는 입을 벌린 채 숨이 가빠 씩씩거렸고, 껌벅이는 양순한 눈과 벌름거리는 검은 콧구멍에서 피눈물과 체액을 흘리며 굳건히 2 분 동안이나 서서 버텼다. 질식으로 산소를 공급받지 못한 얼룩말의 강인한 뒷다리가 가장 먼저 힘을 잃고 주저앉았고, 의식을 잃어가던 머리통도 사바나의 뜨거운 모래바닥에 모로 떨어져 피곤한 두 눈을 감았다. 미련을 품고 달려드는 암사자를 위협하여 쫓아낸 수컷사자가 옆으로 누운 종마의 사타구니, 가죽이 가장 얇은 곳을 골라 앞니와 송곳니로 단단히 물고 얼룩말의 배 쪽으로 일시에 치당겨 뱃가죽을 찢었다. 얼룩말의 갈라진 아랫배에서 꾸불꾸불한 회갈색 창자와 큰 수박같은 방광이 피와 더운 물과 함께 악취를 뿜으며 초원의 메마른 모래밭 위에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자줏빛 염색물감을 통째로 머리에 뒤집어 쓴 듯 끔찍한 악귀의 모습을 한 수컷사자의 게걸스러운 식욕과 탐욕의 이빨을 조금도 겁내지 않고, 등에와 모기와 파리가 새까맣게 날아들어 피와 포식과 부패의 향연을 시작했다. 피냄새를 맡은 자칼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사자들의 먼 주위를 기웃거렸고, 청소부 황새와 독수리들이 공중에 맴을 그리며 날아들어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하나 둘 씩 내려앉았다 ; "위는 바람(巽)이요 아래는 연못(兌)이니, 이 괘를 '풍택중부(風澤中孚)'라 한다. 중부는 성실(誠實)이라는 뜻이다. 괘의 모양을 보면, 바람이 연못 위에 불어 쉴새없이 잔잔한 물결을 일으킨다. 즉 사람의 정이 사랑하는 어린이에게 가실 줄 모르고 미치는 것이다. '孚(부)'자는 발톱이란 글자 '爪(조)'와 '子(자)'가 합쳐서 이루어졌으니, 마치 어미새가 날카로운 발톱 사이에 연약한 새끼를 기르며 애태우는 형상이다. 즉, 지극한 정성과 조심스런 사랑을 말한다." 꽃과 새를 많이 그리는 화가 손경혜 씨는 대학동창의 개인전에 초대받았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함께 그 부근의 공원에서 모처럼 여학교 시절의 분위기에 휩싸여 '공작비둘기 주역점'이란 것을 장난삼아 돌려가며 보았는데, 정작 그녀를 감동시켰던 것은 비둘기가 뽑아 물어다 준 쪽지 속의 '사랑의 점괘'보다는 눈부시게 흰 그 새들의 고운 자태였다. 며칠동안 여러곳의 새 파는 집을 수소문하며 찾아다닌 끝에, 공원에서 보았던 것과 꼭 같은 순백색의 공작비둘기 한 쌍을 발견하게 되자 그녀는 환호성을 지르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손경혜 씨는 '아내'와 '남편'이라 이름붙인 한 쌍의 흰 비둘기를, 유리로 막은 베란다 겸 온실에 풀어놓았다. 화려한 빛깔로 만발한 꽃들을 배경으로 하얀 공작비둘기들이 자연스레 노는 모습을 화폭에 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쌍의 공작비둘기 '아내'와 '남편'은, 손경혜 씨가 스케치를 하다말고 전화를 받으러 나오며, 거실과 베란다 사이의 미닫이 문을 무심코 열어놓은 틈을 타서 거실로 뒤뚱뒤뚱 걸어나왔다. 비둘기들은 거실의 한쪽, 주방 뒷벽 위에 열려 있던 작은 통풍창문으로 날아올라가 아무런 망설임없이 바깥세상으로 빠져나갔다. 힘없는 근육과 서투른 비행기술, 좁은 새장에 갇혀 있던 시절의 운동부족과 영양 과잉상태에서 비롯한 쓸데없는 비만, 먹이를 혼자 힘으로 구하는 일 등 '아내'와 '남편'이 당장 극복해야 할 어려움은 많았다. 그러나 처음 며칠간의 심각한 위기를 살아서 견뎌낸 한 쌍은 이윽고 자유의 생활에 그런대로 적응한 듯이 보였다. 그들은 동네의 하늘 풍경을 오랫동안 지배해온 잿빛비둘기 집단에 끼어들 수 있었다. 혼잡한 대도시 안에서 인간과 공존하는 방법을 터득한 비둘기들은 대도시의 갖가지 공해와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먹이와 물 그리고 둥지 틀 장소를 찾는 데서 비교적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따라서 도시의 비둘기들은 기본적인 생존의 과제를 해결한 자유상태의 동물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왕성하며 지속적인 번식충동의 압박을 받고 있다. 잿빛비둘기 집단에 합류한 '아내'와 '남편'도 비좁은 새장에 갇혀 있을 때에는 심각한 운동부족과 권태로운 무자극, 무의미한 영양과다와 희망없는 무료에 짓눌려 미처 체험하지 못했던, 짝짓기와 번식의 충동을 회복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번식기의 비둘기 암컷은 한사코 '비교우위'에 있는 수컷을 선택하라는 본능의 절대적 지배를 받으며, 또한 조류 공통의 이같은 동물적 본능이 순백색 공작비둘기 암컷인 '아내'에게도 예외없이 적용된다는 데에 있었다. 자신의 유전형질을 다음세대로 확실하게 전달할 능력이 있는 우성의 수컷만을 배우자로 정하려 하고, 또한 자기 배우자선택의 올바름을 반복하여 확인하려는 '아내'의 욕구가 암컷으로서의 평범하고 정당한 습성이었음에도, 수놈인 '남편'은 이에 대해 적절한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우선 '남편'은 지난날의 오랜 감금생활 때문이었을까, 자신이 다른 수놈들과 비교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가 어려웠고, 우성의 수놈이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비둘기 특유의 자기 현시행위 - 목을 곧게 세워 키를 커 보이게 하고 가슴을 부풀린 채 당당한 걸음걸이로 쿵쾅거리며 '아내'의 주위를 맴도는 따위의 일도 제대로 익힐 수 없었다. 그런데 비둘기 사회에서 수놈들의 이같은 자기 과시 행동은 무척 중요하며 특히 암컷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 일이었다. 수놈들의 힘과 남성다움의 전시는 그 배우자가 되는 암컷들의 사회적 지위와 서열을 결정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흰 공작비둘기의 암컷인 '아내'는 그래서 암놈비둘기들의 사회안에서 점점 주눅이 들었고 '남편'을 원망하게 되었다. 자기가 타고난 신분과 아름다움에 훨씬 못미치는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열등한 '남편'으로 인해 몹시 불운하다는 기분에 빠지게 된 것이다. 결국 '아내'는 배우자로서 충실하지 못하다는 구실을 내세워 '남편'과 결별했다. 알에서 갓깨어난 연약한 어린 새끼에게 아버지인 '남편'의 존재가 절실하게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실현되지 못한 행복에 대한 집착과 회한이 '아내'의 강한 모성애마저 눌러 굴복시킨 결과였다. '아내'에게 배척받았을 뿐 아니라 어린 자식도 사랑할 수 없게 된 '남편'은 깊은 절망에 빠졌으며, 다른 비둘기들의 어린 새끼가 눈에 띌 때마다 - 엄마와 아빠의 돌봄을 받으며 명랑하게 성장하는 어린 비둘기들을 넋을 잃고 볼 때마다 - 남몰래 피눈물을 삼켰다. 그의 식도는 언제나 풍부하게 생산해 놓고도 전혀 쓸 모가 없게 된, 어린 자식을 위한 진한 젖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비둘기는 친족관계에 있는 사랑앵무와 마찬가지로, 암놈이 아닌 수놈이 곡식을 소화해 만든 젖을 어린 새끼에게 토해 먹이는 습성을 갖고 있다.) 순백의 공작비둘기 수놈인 '남편'은 깊은 낙망과 슬픔, 자신의 못남에 대한 가책, 암놈인 '아내'를 향한 원망과 연민, 헤어진 어린 자식의 운명에 대한 애끓는 격정과 안타까운 연모에 사로잡혀 도시의 하늘 위로 미친 듯 비상했다. 그는 온갖 종류의 비둘기를 포함하여 일찌기 어떤 생물의 지각도 도달하지 못한 최고의 공간에 이를 때까지 더욱 높은 곳을 향한 날개짓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그의 시야 아래에 산과 강물, 새로운 도시들과 한없는 바다, 알려지지 않았던 대륙과 큰 산맥들이 영원으로 인도하는 푸른 지도처럼 열렸다. 빛나는 황금 햇살과 순수한 은으로 지은 구름폭포 사이 툭 트인 창공에서, 그는 초월을 향한 만다라의 과녁처럼 완전한 금강의 동심원을 그린, 사라지지 않는 한 쌍의 무지개를 보았다 ; Image via Amy Thest 사무엘의 마음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미끄럼틀의 꼭대기 난간 밖, 그러니까 미끄럼틀에서는 소녀들이 줄넘기놀이를 하고 있는 쪽으로 2 미터 떨어지고, 높이로는 어린이 놀이터의 지표면에서 4 미터 올라간 공중에서 찬찬히 지켜볼 수 있었다: 순 흰색의 공작비둘기 한 마리가 시간을 초월한 사무엘의 마음이 머무르는 허공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날라갔다. 비둘기는 사무엘의 어린 아들 다니엘이 난간을 붙들고 서 있는 미끄럼틀 꼭대기 위를 통과하며, 길이 7 센티미터에 가장 넓은 곳의 폭이 3 센티미터가 되는 비대칭형 날개깃을 하나 떨어뜨렸다. 공작비둘기의 흰 깃털은 대기의 저항과 미풍의 인도를 받으며, 사무엘의 아들 다니엘 쪽으로 우아하고 불규칙적인 하강비행을 했다. 심지어 다니엘의 얼굴 앞에서 40 센티미터 떨어진 상공에서는 작은 상승기류를 타고, 1 초 이상 허공에 머물러 좌우로 몸을 떨며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둘기 깃털의 찬란함과 그 움직임의 교묘함은 하루종일 다니엘을 짜증나도록 짓누르고 있던, 마음의 혼란과 울분을 잊게 했다. 이윽고 비둘기의 깃은 다니엘의 발 앞에 있는 삼각형의 평평한 검은 돌 위에 미끄러지듯 살며시 내려앉았다. 거의 정삼각형의 모양을 한 그 돌은 한 변이 20 센티미터, 두께는 가장 두꺼운 곳이 6 센티미터 정도 되었는데, 여자아이들이 소꿉장난을 하느라 그곳에 올려다 놓은 것이었다. 공작비둘기의 흰 깃은 삼각형의 검은 돌제단 위에 놓인 흠없는 제물처럼 보였다. 다니엘은 어린이다운 몸짓으로 쪼그려 앉으며, 통통하고 하얀 작은 손을 뻗어 비둘기의 흰 깃털을 집어 들었다. "아빠! 이것 봐, 참 아름다운 날개야!" 다니엘은 난간의 세로목들 사이로 비둘기 깃을 쥔 손을 내밀어, 미끄럼틀 바로 밑에서 자기를 올려다보고 있던 사무엘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말하다가, 아빠 뒤쪽에 조금 떨어져 서서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엄마와 눈길이 마주쳤다. 순간 다니엘은 멈칫하며 움츠러들었다. 다니엘은 오늘 아빠를 만나면, 아빠와는 놀이는 물론 말도 그리고 아는 채도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엄마와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에 굳게 약속했었다. 아까 집에서 엄마는 웃도리는 얇은 속옷만 입은 채로 화장을 하다말고, 아빠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또 엄마를 얼마나 슬프게 했는지 다니엘에게 말해주다가, 새 옷을 입은 다니엘을 부둥켜 끌어안고 눈물을 마구 흘리며 서럽게 울었다. 오전 내내 마음을 짓눌렀던 혼란스러운 울분과 명치를 파고드는 복통이 다니엘을 순식간에 다시 사로잡았다. 다니엘은 항상 아빠가 보고 싶었다. 아빠를 끌어안고 서로 엉켜 씨름도 하고 함께 놀고 싶었다. 그래도 다니엘은 엄마에게 미안했다. 엄마가 아침에 흐느껴 울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다니엘이 다시 고개를 들어 아빠 엄마를 내려다 보았더니, 이제 아빠는 다니엘에게서 등을 돌리고 엄마에게 무언가 열심히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열심히 말하고 있는 아빠를 굳은 얼굴로 외면한 채 다니엘 쪽의 하늘만 빤히 올려다 보고 있었다. 다니엘은 오랫만에 만났는데도 어깨 위에 올라가 목마도 타지 못하고, 함께 놀 수도 없고, 그리고 지금은 자기에게 등을 돌린 아빠가 야속했다. 다니엘은 발앞에 있는 삼각형의 평평한 돌을 양손으로 들고 일어났다. 이렇게 무겁고 큰 검은 돌을 들어 아빠에게 떨어뜨리면, 얼마나 힘이 센지 엄마에게 보여줄 수 있고, 그래서 집에 가면 엄마는 다니엘이 얼마나 무겁고 큰 돌을 들어올렸는지 외할머니에게 자랑할게 분명했다. 다니엘은 아빠와는 말도 아는 채도 하지 않기로 엄마와 손가락을 걸어 굳게 약속했던 것이다. 다니엘은 돌을 더 높이 들어올려 간신히 난간 위에 걸쳤다가, 밀어 떨어뜨렸다. 다니엘이 떨어뜨린 그 돌은 한 바퀴 반을 돌며 떨어져 사무엘의 윗머리 한가운데, 그러니까 정수리 바로 위, 요가에서 일곱째 번 차크라가 있다는 곳에 내려와 꽂혔다. 사무엘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바닥의 모래밭에 얼굴을 박았고, 돌은 앞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의 정수리에는 지름 3.5 센티미터의 둥근 구멍이 났다. 깨어진 두개골의 조각이 안으로 함몰해 대뇌를 압박했다. 상처에서 피가 쉴새없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피의 상당량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순식간에 두개골의 내부로 흘러들어 온 두뇌로 확장되었다. 이미 의식과 호흡을 잃은 사무엘의 뇌세포와 신경들이, 치명적으로 솟아오른 뇌압에 대항해 생존을 위한 영웅적 투쟁을 하다가 일시에 장렬하게 죽어갔다. 동시에 사무엘의 심장도 박동을 멈췄다. 그것은 번개처럼 짧고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한 은혜로운 죽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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